대한민국 사회는 더 이상 공정하지 않다. 계층 간 희망의 사다리가 사라진 지는 아주 오래 됐다. 이제 가난의 대물림은 학생들에게까지 전가돼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미 옛 이야기가 돼 버렸다. 사회는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해 젊은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과거 계층 간 사다리 역할을 해왔던 사법고시 대신 차지한 로스쿨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것이 됐다. 시험이라는 경쟁을 통해 좋은 대학을 가는 정시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고, 이들을 뒷받침할 사교육은 갈수록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돼 있다.

이런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 대해 미국의 사회학자인 스티븐 맥나미와 로버트 밀러 주니어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능력주의는 허구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능력주의란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비례해 보상을 해주는 사회시스템으로 누구나 열심히 노력해 능력만 쌓는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원칙인데 이 능력주의는 사회에서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현대사회의 경쟁을 릴레이경주로 묘사했는데, 이 릴레이경주에서 부유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결승점에서 혹은 결승점 근처에서 출발하는 반면, 가난한 부모를 둔 사람들은 출발점에서 출발하므로 경쟁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현대사회는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두개의 큰 기둥, 즉 능력적 요인과 비능력적 요인 중에 개인의 능력보다 비능력적 요인이 훨씬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비능력적 요인에는 부모의 배경, 학교와 교육시스템, 사회적자본과 문화적자본, 부의 상속, 특권의 세습, 차별적 특혜, 사회 구조적 변화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학교와 교육은 삶을 대물림하는 잔인한 매개체가 돼버렸다고 지적한다. 즉 계층에 따른 교육기회의 불평등, 차별적으로 분배되는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부의 세습과 무형의 상속 자산이랄 수 있는 특권과 특혜의 대물림, 편견에 의한 차별 등과 같은 비능력적 요인들이 진학과 취업, 승진, 소득, 부의 격차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 교육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세계일보 김건호 기자는 10월 31일자 기사를 통해 사라진 공정경쟁 제도들 중에 입시제도와 사법고시를 예를 들면서 더 이상 우리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에 따르면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한 지난 2016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5만 6000원으로, 월 700만 원을 버는 가정에서는 사교육비로 44만 원을 쓰는 반면, 100만 원 미만의 소득을 버는 가정에서는 월 5만 원을 사교육비로 쓴다는 것이다.

대학입시에서 정시가 축소되고 사법시험이 폐지가 되면서 사실상 계층 간 이동을 위한 사다리는 사라졌다. 지난 1963년 시행된 사법시험은 변호사 또는 판사, 검사 등 법조인이 되기 위해 치르는 필수 자격시험으로 희망 사다리 역할을 해왔지만 지난 2009년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폐지됐다. 하지만 로스쿨은 지금까지도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는 것이다. 사립대 로스쿨의 평균 학비는 2000만 원에 달하고 이런 고액의 학비는 서민들의 법조계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또 내신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대입 정시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3년간 성적을 유지해야만 하는 수시제도의 경우 사교육이 힘든 학생들 입장에서는 선뜻 도전하기 어려운 제도다. 또 각종 자료를 만들고 이른바 스펙을 쌓아야하는 입학사정관제도 이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내신경쟁 격화와 고액과외에 따른 사교육비 증가라는 역작용만 낳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사회는 계층간 이동 사다리가 사라져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지났다. 이는 더 이상 공정하지 않은 사회라는 것이다. 국민들의 생각도 이미 공정한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11년 정부가 우리 사회가 공정한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국민들의 73%가 우리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공정하지 않은 사회, 희망이 없는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제라도 공정한 사회, 희망을 주는 사회를 향한 제도와 정책들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래야만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샬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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