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그렇다. 내가 어긋나지 않게 똑바로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뒤를 돌아보면 바르게 걸어오지 않았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목표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지 않음을 인지함에도 결국 목표에 도달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당장 내가 똑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만하면 안 되고 곧바른 길을 가지 않아도 좌절하면 안 된다. 대청호오백리길 14구간이 그랬다. 제대로 길을 가는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고 제대로 길을 가지 않는 것 같았지만 결국 목표에 도달했다. 우리네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은 늘 그렇듯 멀지 않은 곳에 있다.

◆ 똑바른 길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
대청호오백리길 14구간은 충북 옥천 안내면의 신촌교 습지공원에서 시작한다. 습지공원은 신촌교 바로 옆에 조성돼 잠시 이곳에서 몸을 풀 수 있다. 인근엔 작은 게이트볼장도 있어 마을 어르신이 옆집 철수를 욕(?)하는 소소한 담소도 엿들을 수 있다. 습지공원에서 조금 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항아리를 만드는 안내토기공장이 있어 색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지도상으론 신촌교가 바로 금강이 대청호로 시작되는 구간이어서 평소에 갖는 마음가짐과 달라진다. 본격적인 코스의 시작은 신촌교를 나와 지방도 575번을 따라 걷는 것이다. 약 1.5㎞만 걸으면 되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다. 주인은 잠시 외출해 혼자 집을 지키는 견공과 추수를 모두 끝내 잠시 휴식에 들어간 논과 밭을 지나면 신촌한울체험마을로 안내하는 대청호오백리길 14구간의 첫 번째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이정표를 따라 지방도를 벗어나 왼쪽의 체험마을로 들어선다. 체험마을에서 계속되는 길은 외길이기 때문에 포장된 시멘트 도로를 그저 따라가면 된다. 다시 20분쯤 지났을까.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탑산이’로 향하는 이정표인데 조금 알아보기 힘들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총 세 곳. 그런데 당장 보이는 갈림길은 두 개다. 오른쪽의 가파른 임도. 한 집으로 향하는 작은 도로. 분명 이정표가 있는 것은 이 중 하나로 가야 한다는 건데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겠다.

자세히 보니 나무에 시야가 걸려 보이지 않은, 두 갈림길 사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제대로 걸어왔다면 3시 방향으로 난, 하마터면 보지 못했던 길로 향해야 하는 것이다. 첫 번째 관문은 이렇게 통과했다.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산보를 시작하면 작은 사방댐을 만날 수 있다. 강수량이 적었는지 댐이라 부르기 부끄러울 정도의 물만이 졸졸 흐른다. 그나마 흐르는 물도 일부는 얼었다.

사방댐을 지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갈림길이 또 나온다. 오른쪽은 잘 포장됐고 왼쪽은 산으로 향한다. 마음 같아선 오른쪽으로 향하고 싶지만 목적지인 탑산이는 ‘산’이 포함됐기 때문에 왼쪽으로 향해야 한다. 왼쪽으로 들어서자 산길치곤 잘 정비된 길을 따라 걷는다. 제법 가파르지만 그렇다고 못 올라갈 정도는 아니다. 정 올라가기 힘들면 잠시 짐을 풀고 뒤를 돌아본다.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억새가 자연스럽게 형형색색 지붕이 있는 마을과 함께 어우러진다.

조금 숨을 돌리고 다시 길을 들어선다. 길이 제법 잘 나있던 탓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걷는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으니 그 흔적을 믿을 뿐이다. 그리고 이때까지의 길 역시 생각해보면 제법 정돈된 느낌이 있었다. 약 20분 올랐을까. 흔적은 점차 희미해지고 나뭇가지에 걸린 표지기 역시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잘못됨을 느꼈다.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이대로 돌파를 해야 할지가 고민됐다.

당장 눈에 보이는 건 잘못된 길이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걸어온 길을 되짚어볼 때 이 길 말곤 있을 수 없었다. 재고에 재고를 거듭했다. 시간은 불과 20분이지만 올라온 고도를 생각하면 하산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고심 끝 내린 결정은 마지막 대청호오백리길의 이정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12월 13일자 본보 10~11면 와이드 지면

◆ 그렇지 않은 길이 때론 맞다
하산을 결정했지만 내려오면서도 ‘분명 이 길이 맞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탑산이로 향하는 이정표에 잠시 서 조금 자세히 인근을 둘러보니 자신감은 결국 오만이었다. 잘 정비된 산길 바로 옆 나무가 울창해 음산한 작은 길이 있었다. 표지기도 몇 개 묶였다. 잘못된 길을 20분이나 오르고 다시 20분이나 하산하느라 체력은 방전 직전이었다.

그리고 초입의 느낌은 너무 음침했기에 대청호오백리길 14구간의 정식 코스란 느낌은 없었다. 주변엔 잘 정비됐지만 결국은 정식 코스가 아니었던 산길, 체험마을로 돌아가는 길, 그리고 표지기가 있지만 음침한 길. 표지기를 믿고 음침한 길로 들어선다. 입구는 유독 나무가 울창해 음의 기운이 가득하다. 흡사 귀신이 나오는 기운이 이 기운이라 해도 믿을 정도. 그러나 표지기를 믿고 길을 따라 올라선다. 그러나 이내 길이 끊겨버린다.

역시나 했지만 저 멀리 형형색색의 표지기가 보인다. 이 길이 아닌 것 같지만 표지기를 믿고 길을 어떻게든 헤쳐 나간다. 표지기를 따라 가도 길 자체는 전혀 사람이 지나간 흔적도 없다. 그리고 어느 순간 좁지만 많은 이들이 지나간 자국이 보이기 시작한다. 간혹 이런 흔적도 사라지지만 표지기는 일정 간격으로 꾸준히 묶였다. 그리고 10번 가까운 곡선이 등장한다.

가뜩이나 떨어진 체력에 오르막이라 힘이 부친데 곡선의 길을 보자 한숨부터 나온다. ‘역시나 이 길은 아닌가보다’라고 했지만 내려가기엔 심신이 너무 지쳤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는 심정으로 10개의 곡선을 주파하기로 했다. 1개의 곡선을 통과할 때마다 주저앉아 체력보충에 들어가며 호흡을 조절해본다. 아기의 첫 걸음마처럼 느린 속도로 10개의 구간을 통과하자 이때까지 먹었던 마음은 틀렸음을 느꼈다.

대청호오백리길임을 알리는 푯말이 나왔다. 이산가족의 상봉만큼은 아니지만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작게 탄식이자 안도감을 표현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푯말이 가리키는 방향은 전혀 길이 아니다. 누가 봐도 능선을 따라 오르막을 향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번 빗나간 예상을 믿지 않기로 했다. 푯말이 가라는 대로 아무도 가지 않은 낙엽길을 헤쳐본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낙엽이 부서진다. 바스락 부서지는 소리가 마음을 할퀸다. ‘이 길이 아니면 어떡하지’라는 걱정 때문이다. 10분 쯤 걸었을까. 푯말이 아닌 이정표가 나온다. 제대로 왔다는 표시다. 임도를 만나자 왼쪽으로 길을 틀어 장고개로 향한다.

장고개까지의 길은 잘 가꿔진 임도다. 흙길과 낙엽길만 걷다 딱딱한 임도 걸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피로감이 몰려온다. 대청호도 보이지 않고 계속된 산길이 시선의 피로를 더한다. 그나마 장고개를 나와 등장하는 화골삼거리 반대편에 보이는 대청호오백리길 9구간의 출발지인 진걸선착장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화골삼거리를 지나 작은 답양리마을을 지나면 출발지에서 만난 지방도 575번이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대청호오백리길 14구간의 끝이 다가온 것이다. 지방도 575번을 약 20분 정도 걸으면 보은 회남면이다. 충북 옥천에서 시작된 여정이 보은에서 종료되는 것이다.
자신이 걷는 길이 항상 올바르지만은 않다. 대청호오백리길 14구간처럼 길이 아님에도 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감이 자만감이 되지 않도록 가끔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가끔은 둘러보자. 잠시 떨어진 체력도 보충할 겸 말이다.

글・사진=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영상=정재인 기자 jji@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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