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작가, 한국문인협회 이사

김영훈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하더니, 어느 새 또 한 해를 마감하려고 한다. 오늘이 섣달 열이레이니 올해도 열나흘이 남이 있을 뿐이다. 세월이 무정하기만 하다. 지난 여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폭염에 시달렸었는데 이제는 벌써부터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면서 맹추위가 다가올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한 해를 보내는 소시민으로서 필자의 마음은 그 폭서, 폭한에 못지않게 어렵고 착잡하기만 하다.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남북문제가 내년에는 어떻게 펼쳐질까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인 정황으로 봐 이 나라 남북문제의 향방을 예측할 수가 없잖은가? 정부 측은 남북평화를 위한 로드맵대로 잘 진행돼 가고 있음을 국민에게 각인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에 찬동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쪽에선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다. 정말 이렇게 가다간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질지도 모르겠다면서, 북한의 의도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냐며 국가의 존립을 걱정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필자는 양측의 견해에 대해 종잡을 수 없다. 판단력을 잃은 채 1년 내내 서 있었는데 내년엔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 걱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겪는 이 정황이 비단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미·중·러·일 4대 강국의 위세 속에 휘둘리는 아픔인 동시에 동북아, 아니 세계적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외세를 배제하곤 스스로 설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의 한반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할 수밖에 없고,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까지 곤고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필자는 이 세밑에 지금까지 이 땅을 지키며 살아오는 동안 우리 조상들이 맞았었던 시련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원시 씨족사회를 마감하고 부족사회를 거치면서 나라꼴을 갖췄던 삼국시대에 고구려·백제·신라의 쟁투는 결국 ‘통일신라’라는 형태로 마감됐다. 당시 고구려는 연개소문 아들들의 다툼 속에 내분이 있었고, 백제는 총명했었던 의자왕의 정신이 흐려졌다. 그 틈을 타 신라가 당(唐)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인다. 한반도가 중국의 변방으로 추락한 것은 신라의 잘못된 외교전략에서 비롯됐다. 내분으로 중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추락시킨 고구려인들의 책임도 있다. 피가 터지든 코가 깨지든 삼국 중심의 통일을 했더라면, 그래서 그 광활한 중원 땅의 일부만이라도 지켜냈더라면 우리 역사가 지금과는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한 번 잘못된 역사는 고려시대로 이어져 몽고에게 어려움을 당하면서 강화도로 몽진(蒙塵)까지 가야 했다.

조선시대에 와선 더 종속화됐다. 해양세력인 일본이 일으킨 임진왜란·정유재란 때에는 명나라와의 ‘조선 양분설’을 낳게 했고, 여진족인 청에게는 남한산성의 치욕을 당했다. 그리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조선은 영·정조시대에 이르러 ‘유학만 갖고는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없다. 양반도 일을 해야 하고, 과학과 실학을 발전시켜야 나라의 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라는 조짐이 있었지만, 이 절호의 찬스를 놓쳤다. 조선 말 한반도는 다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투쟁의 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는 남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이란 대업을 수행해야 한다. 이 시점에 우리가 어떤 통일을 이뤄야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오고, 한민족이 번영할 수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미·중·러·일이란 막강한 배후세력을 국익을 위해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외교전략을 펴야 한다. 국토 대부분을 내주는 신라식의 통일을 한다면 또 다른 주종관계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런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면서 우리 손으로 우리의 지도자를 뽑아 진정한 행복과 번영을 누릴 수 있는 통일이어야 한다. 통일이란 포퓰리즘에 휘말린 채 자칫 잘못된 선택을 했다가는 우리 스스로 불행한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는 후손들에게 씻지 못할 죄를 범하는 일이다. 참으로 걱정스럽기만 하다. 소시민으로서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이 이렇게 착잡한 것은 필자만일까? 두 손 모아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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