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이슈-연말연시 나눔의 온도차]

[연 12조 기부금 양적 성장 불구 ‘기부의 빈곤’ 문제제기]
[기부문화의 질적 개선 위한 다양한 방법론 자리 잡아야]

#. 차가운 도심 어느 곳에선가 들려오는 구세군의 따뜻한 종소리와 그 옆에 늘어선 자선냄비가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고 높이 솟은 ‘사랑의 온도탑’이 행인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사람들은 삼상오오 자선냄비에 돈을 전한다. 뉴스를 켜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이름 없는 선행가들의 기부 소식도 전해온다. 매년 이어지는 따뜻한 풍경. 반면 여전히 ‘예년에 비해 기부금액이 적다’는 차가운 소식에 국민의 걱정이 커진다.

연말이면 흘러나오는 ‘기부의 빈곤’ 지적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 불경기 때문이라거나 지난해 새희망씨앗재단, 이영학 사건 등의 기부 관련 스캔들 이후 언론매체에서 기부 관련 미담 사례 언급이 급속도로 줄어든 이유가 제시되기도 하고 정부가 기부 관련 세제 혜택을 줄였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귀를 솔깃하게 한다. 다만 또 다른 이유로 기부단체의 편중 등 기부문화의 문제와 기부형태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 역시 특기할 만 하다. 단순히 기부의 액수가 적은 문제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문제제기라는 점에서다.

기부단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부 수준은 세계 어느 나라와 견줘도 부족함이 없다. 2000년대를 기점으로 기부문화가 급성장을 시작했다. 2001년 국세청 기준 전체기부금이 4조 원 대에서 2016년 12조 원 대에 달하는 등 양적으로 큰 성장을 이뤘다. ‘2018년 연말 기부액이 적다’는 염려의 시각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기부문화가 양에서 질로 바뀌는 과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과거에는 연말에만 기부를 했지만 최근에는 월정기부 등으로 기부의 질이 좋아졌으며 구세군도 현물이 아닌 카드 등을 통한 기부가 많아져 표면적으로 썰렁해 보인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급속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의 기부문화에 대해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진단이 나온다.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연구교육팀 전문위원은 “1000억 원 이상 모금하는 대형 단체들은 광고비 집행 등 자원이 풍부해 몇몇 기관에 모금이 집중되고 다”며 “슈퍼스타 단체들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20여 슈퍼스타 외에 약 5만 개에 이르는 민간단체들은 기부문화 성장의 길목에서 빗겨나 있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반인의 소액기부 참여는 비슷하지만 부자들의 유산 기부나 재단설립은 외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며 기부문화 선진화의 과제도 제시했다.

다양한 기부단체가 공존해 사회 곳곳에 온정을 전하고 유산기부 등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정착되는 등 새로운 기부풍토가 마련돼야 한다는 거다. 전 위원은 최근 새로운 기부문화 경향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젊은 세대들이 정기기부뿐만 아니라 본인이 팟캐스트나 기사를 접했을 때 바로 선택해 바로 후원하는 ‘이슈 기부’가 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예술가 지원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후원하는 크라우드 펀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빙코리아 2018에 따르면 공익상품 구매나 서명 참여 등 다양한 이슈 참여가 활발해 지는 부분이 눈에 띈다”고 덧붙였다.

기부문화에 대한 변화 조짐도 나타나는 가운데 기부의 본질이 사랑인 만큼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는 당부도 나온다. 전 위원은 “겨울에 귤 상자를 들고 양로원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할머니 말씀이 겨울만 되면 귤을 많으 드셔서 설사를 한다고 했다”며 “기부나 나눔도 받는 사람에 대한 고려가 전제된 상태에서 이뤄져야 진정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곽진성 기자 pe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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