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포용을 잃었다. 세상엔 내 편과 내 적이 존재할 뿐 보듬고 가야할 대상은 없었다. 한 때는 동서로 갈려 상처를 주고받던 나라가 이제는 이념으로 갈라섰다.

따지고 보면 다 같이 잘 살자는 목표는 같다. 그런데도 목표점에 도달하려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니, 길을 찾는 방법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를 수도 있다는 단순한 명제를 우리 사회는 너무도 오랜 세월 인정하지 못하고 살았다.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는 일방적 사고방식이 저마다의 가슴에 똬리를 틀었다.

나와 다른 자는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는 이분법이 사람들을 갈랐다.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의식이 성장했지만 포용하는 사회의 모습은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세상에는 흑과 백이 있고, 귀와 천이 있고, 좌와 우가 있다고만 여겼다. 흑은 백을 알려들지 않았고, 백도 흑을 알려들지 않았다. 오로지 비난하고 가슴에 비수를 꽂으려고만 했다.

2019년은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포용할 줄 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인정하고 이해하면 세상은 한결 부드러워지고 아름다워진다. 포용하는 법을 익히면 내가 먼저 따듯해진다.

금강일보는 2019년의 어젠다를 ‘포용하는 사회’로 정했다. 도전, 열정, 패기만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만 살아온 우리는 목표를 향해 좌고우면 없이 정진하는 모습만이 최고의 선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포용은 지금의 우리가 회복해야 할 최우선적 가치이다. 반목하고 갈등하는 모습은 이미 구시대의 산물이다. 20세기에도 통하지 않던 19세기형 낡은 프레임 속에 아직도 갇혀 살아가고 있다.

버려야 한다. 반목과 갈등을 버리고 포용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 길만이 21세기형 사회의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 냉전의 시대가 종말을 고한 지 사반세기가 지났지만 우린 극심한 대립 속에 살아가고 있다.

불구대천지원수라고만 여기던 북한과도 손을 잡고 포옹을 했다. 그런 시대에 살아가면서도 아직도 이념을 놓고 으르렁거리는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를 살아가는 모습이다. 2019년 해가 떠올랐으니 이제는 따듯해져야 한다.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를 안아주어야 한다. 강자는 약자를, 다수자는 소수자를 포용해주어야 한다. 2019년은 누구랄 것 없이 먼저 손을 내미는 아름다움이 넘쳐나야 한다. 우리 충청이 가장 먼저 포용의 사회를 이끌고 가자.

충청이 포용하는 사회의 선구자가 되자. 포용의 문화가 이곳에서 출발됨을 세상에 알리자. 금강일보가 충청인과 함께 할 것이다. 포용하는 사회, 2019년 금강일보가 이끌 것이다. 충청인이 앞서 손 내밀고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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