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

 
3.8민주의거 주역들과 허태정 대전시장이 지난해 11월 22일 중구 옛 충남도청 식장산홀에서 열린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 축하행사에서 교복을 입고 만세삼창을 하며 '그날'을 기념하고 있다. 금강일보 DB

한국 근·현대사에서 독재정권에 맞선 학생운동의 기폭제가 된 ‘3·8 대전민주화운동’이 지난해 49번째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이는 대전지역 전체의 역량이 결집된 결과로 3·8민주의거를 기념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은 오래전부터 이뤄져 왔다.

경북고와 대구고 학생들이 함께 벌인 대구 2·28민주화운동에 이어 최초로 대전고 전교생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3·8 민주의거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돼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로 퍼졌고 숨죽이고 자유당 부정선거운동을 지켜보던 시민들에게도 큰 자극을 줬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갖가지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전국적으로 부정선거가 만연했던던 1960년 2월 28일 이승만 정권은 대구지역의 학생들에게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등교를 명령했다.

이날 열릴 야당 선거유세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참다못한 학생들은 자유당 정권의 횡포에 반기를 들며 거리로 뛰쳐나와 경찰과 충돌했다. 이 소식을 들은 대전 지역 학생들은 불안과 공포, 울분에 휩싸인다.

3월 7일 수업도중 대전고 학생간부들은 교장관사로 불려간다. “8일 열리는 야당 정견 발표에 대전고 학생들은 가지말라”는 교장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다음날인 3월 8일 야당 정견 발표를 계기로 전교생이 시위를 감행하자는 합의에 도달한다.

이미 대규모 시위계획을 알아차린 학교 측에 의해 대전고 학생간부들은 교장사택에 감금됐지만 3·8민주의거의 그날, 결국 학도호국단의 지휘아래 대전고 학생들은 학교 담을 넘어 거리로 뛰쳐나왔다. 야당 부통령후보인 장면의 선거연설회에 맞춰 대전고등학교 1·2학년 1000여명이 거리로 나와 독재타도와 학원의 자유를 외쳤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독재정권에 항거한 이 사건은 당시만 해도 엄청난 이슈였다. 학생들의 결의문 낭독이 이어지자 무장경찰이 이를 제지하고 나섰다. 경찰들은 학생들을 무지막지하게 폭행했다. 하지만 민주화를 향한 이들의 열정을 막을 순 없었다. 10일에는 대전상고 학생 600여명이 자유당의 정부통령 선거전략을 규탄하고 구속학생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대전 서구 둔지미 공원에 조성된 3.8 민주의거 기념탑. 금강일보 DB

대전의 3.8 민주의거는 4·19 혁명으로 이어졌으며 3·8 민주의거 한 달여 만에 이승만 독재는 붕괴됐다. 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하와이로 망명의 길을 떠나도록 했고 제1공화국의 종말을 고하는 역사적 계기가 됐다.

그러나 3·8 민주의거에 참여했던 일부 학생들과 교사는 평생을 시위 후유증으로 살아가야 했다. 일부 학생은 경찰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고막이 터지고 평생 장애를 안고 지내왔다. 4·19에 동참했던 대전고 출신 졸업생 3명은 4·19 혁명 당시 희생되기도 했다.

대구 2·28 민주운동에서 대전 3·8민주의거, 마산 3·15의거로 다시 4·19 혁명으로 승화되기까지 그 험난한 여정에는 민주화 정신의 표출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3·8민주의거는 다른 민주화운동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지역별로 민주화 정신을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펼쳐지면서 해당 시·도에서는 의거가 일어난 날을 분명하게 기념했고, 기념관을 건립했으며 민주혁명정신을 이어받기 위한 행사를 다채롭게 추진해 왔다.

이미 역사적 민주화 의거는 역사적 표상이 돼 전국적으로 인정을 받아온 것이다. 그에 비해 대전 3·8의거는 당시 참여를 주도한 대전고와 대전상고의 교내 행사로 이어져 왔을 뿐 그 정신이 축소된 채 계승돼 왔다. 다행스럽게도 200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전에서 이 민주화 정신을 이어받자는 운동이 크게 확산돼 두 학교 출신의 민주의거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3·8민주화의거기념사업회가 창립됐다.

이에 대전시는 3.8민주의거를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구 둔산동 둔지미 공원 근린공원 내 부지 3300㎡에 높이 25m 규모로 '3.8민주의거기념탑'을 세웠으며 시발점이 된 대전고 교정에도 '3.8민주의거 기념비'가, 목척교 옆에는 지난 2010년 '4.19혁명의 진원지'라는 기념비가 건립됐다.

시는 해마다 이날을 기념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09년에 '3.8민주의거 기념조례'를 제정했다. 지난 2013년 4월 29일에는 충남 아산 출신 이명수 국회의원에 의해 3·8의거를 민주화운동 범위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법안(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오랜 숙원이 의거 53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같은 해 5월 22일 공포됨으로써 민주화에 기여한 업적을 인정받았다. 이윽고 2018년 10월 49번째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올해부터 국가보훈처 주관 정부 행사로 격상, 기념식을 거행키로 했다.

시는 올해 첫 정부행사를 치르고 기념관 건립 등을 추진할 방침이며 이외에도 각종 기념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3.8민주의거기념탑이 자리한 둔지미공원을 3·8둔지미공원으로 이달까지 명칭 변경을 완료하고 기념관 건립을 위한 국비(100억 원)을 확보해 국회와 공조로 장소를 물색할 계획이다. 더불어 메모리얼 기능 강화를 위해 사료 발굴 및 수집을 통한 체계화 및 전산화,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출할 예정이다.

3·8민주의거 추진 주체가 된 기념사업회의 인적·재정적 지원 방안(사무실 및 상근직원)을 마련하고 찾아가는 학생 특강 등 실질적인 시민 공감 사업을 발굴할 계획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토대가 됐던 3.8 대전 민주의거의 역사적 사실과 숭고한 정신을 알릴 수 있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의미가 있다”며 “아직도 3·8의거를 잘 알지 못하는 대전시민들이 대부분이다. 역사적인 한 사건으로 의미가 있는 날인만큼 대전시는 이 날을 기억할 수 있도록 3·8의거 민주기념관도 건립하고, 3.8정신을 계승하는 행사를 확대하는 등 여러 지원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성룡 기자 dragon@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