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칼럼]

박영진 한남대 총동창회장
     / 전 대신고 교장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나에게는 커다란 두 가지 일이 있었다. 6월에는 귀여운 손녀가 태어났고, 며칠 전에는 친척이 한 분 돌아가셨다. 새 생명의 출생과 임종은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이 두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며늘아기가 만삭의 무거운 몸으로 집에 올 때는 무척이나 애처롭고 조심스러웠다. 그러다가 산기를 느끼자 병원에 입원했다. 가족들은 입원실을 드나들며 숨을 죽인 채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길 간절히 염원했고, 다음날 순산을 하자 우리들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뱃속에서 열 달을 자란 뒤에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와 제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다. 생명의 탄생은 참으로 경이롭고 성스럽기만 하다.

기쁨을 머금고 눈물을 글썽이는 며늘아기를 에워싸고 둘러선 사람들은 함께 즐거워하면서 “수고했다”, “아이가 건강하다”며 산모의 손을 꼭 잡아주고 등을 쓸어 위로하면서 축하해줬다. 밥 잘 먹고 몸조심해야 한다고 아기 엄마를 걱정하는 어른들과 아기가 예쁘다면서 덕담을 아끼지 않는 젊은이들로 병실 안은 화기가 끊이질 않았다. 생각해 보면 모두가 새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고 축하하며, 산모를 격려하는 떠들썩한 병실 안이야말로 낙원이나 다름없었다.

며칠 전에는 가까운 친척의 임종을 지켜봤다. 통증을 참아가면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꺼져가는 목숨을 앞에 두고 의사가 가족들을 불렀다. “이제 곧 운명하실 것”이라면서 “보고 싶은 가족·친지들을 부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우리들은 모두 환자 곁으로 모였다. 그분은 더듬거리는 작은 목소리로 “서로 사이좋게 잘 살고, 하늘나라에서 만나자”라는 말을 마치고 이내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병실은 울음바다로 바뀌었다.

그분의 아내는 몸부림치면서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라며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아들은 “아버지, 이러시면 안 돼요. 나 좀 봐요. 내가 아버지 말을 더 잘 들을게요.” 하면서 발버둥쳤다. “아빠, 아빠, 눈 좀 떠봐요. 내가 더 효도하고, 동생 사랑하면서 살게요. 눈 좀 뜨세요”라며 딸도 큰 소리로 울며 아버지에게 매달렸다.

죽은 사람만이 갈 수 있다는 천국이 어떤 곳일까? 그곳에는 눈물이나 슬픔도 없고, 찬양이 넘쳐나면서 기쁨과 평화만 있는 곳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곳도 천국이나 다름없다. 배우자와 자녀들의 눈물 속에 무슨 거짓과 꾸밈이 있겠는가? 형제·자매와 친척들의 몸부림 속에 무슨 속임과 위선과 계산이 숨어 있겠는가? 마지막 이별의 자리에는 진실과 이해와 관용만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곳, 형제간에 끌어안고 서로 하나가 되는 곳, 미움과 원망 대신 오직 용서와 사랑으로 가족과 친척이 하나로 연결되는 이곳이 낙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생명이 태어나서 울음을 터뜨렸지만, 그곳에 모인 가족과 친지들은 출생을 기뻐하면서 축하의 꽃다발을 전해주고 산모를 격려하면서 기쁨을 나눈다. 그리고 이생을 떠나가는 시신을 앞에 모인 유족들은 안타까워 몸부림치지만 서로 사랑하지 못했던 잘못을 뉘우치면서 앞으로는 화목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며 손을 꼭 잡는다. 이렇게 산모를 위로해 주고 축하해 주는 곳, 서로를 용서하고 회심하면서 흩어졌던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곳,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새해가 밝았다. 우리들은 제각기 자신의 바람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 아침을 맞는다. 작게는 자신의 형편이 더 나아지거나, 시험에 합격하거나, 건강을 염원하는 것들이다. 또 가족이나 단체의 행복이나 안녕을 기원하기도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이 사는 지역과 사회에 평화가 깃들고 정치적·경제적으로 안정된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새해 아침에 새 생명의 출생과 임종을 생각하면서 이 땅에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용서와 화해가 가득한 낙원이 점점 확장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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