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대전역을 등지고 중앙로를 따라 걸어가면 멀리서부터 선명한 베이지색 건물이 시원하게 보인다. 누드톤의 세련된 건물은 옛 충남도청이다.

2012년 충남도청이 내포로 이사가면서 건물은 비어버렸다. 충남도의 수많은 일을 처리하던 관청이 이사 갔으니 빈방이 너무나도 많았다. 대전은 광역시였으니 충남과는 관련이 없어 도청의 이전은 명백히 당연한 것이었다. 비어버린 도청 때문에 평생을 장사하며 살아오던 주변 상인들이 하루아침에 손님을 잃었다. 그러자 도청을 허물고 호텔과 복합센터를 지어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게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굳이 도청 자리에 쇼핑센터를 안 지어도 대전에 쇼핑할 곳은 많다. 서부와 북부로 펼쳐진 신시가지의 집앞 백화점을 두고 원도심까지 나와서 쇼핑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도청은 1932년 공주에서 이전해왔다. 공주민의 반대가 폭동처럼 이어졌으나 한방에 눌러버릴 독한 사이토마코토 총독이 있었다. 도쿄에서 도청이전을 결사반대 했음에도 특사를 파견해 끝내 이전을 밀어붙였던 총독이었다. 결정이 되자 일사천리로 신축을 하고 도청을 이전시켰다. 그렇게 대전은 공주가 누리던 소재지로서의 권력을 쥐게 되었다. 친일파 김갑순의 도청부지 헌납으로 만들어진 건물은 급하게 지었다지만 그 자태가 놀랍다. 

스크래치가 들어간 타일을 벽돌구조물에 꼼꼼히 붙여나갔다. 한참 고전주의 양식에서 모던한 근대건축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어깨 힘을 빼고 단아하게 세련됨을 살린 건물이었다. 차가 들어설 수 있는 포치가 있어 도어맨이 상시대기하던 도청은 단순하지만 볼수록 섬세한 건물이었다. 사각의 단순한 건물 틈틈으로 올록볼록 율동감있는 모서리장식이 다채롭다. 외벽 창마다 테라스 위치에 별모양의 장식을 달았고, 욱일승천기와 같다고 하여 뜯겨나갈 위기를 맞았으나 일왕과 상관이 없다는 연구가 제기되면서 지금까지 붙어있게 되었다. 누구의 연구였는지 모르지만 내 눈엔 백퍼센트 일왕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한두 개도 아니고 건물 전면에 붙어있어 떼었다면 참 재미없는 건물이 될 뻔해서 그 연구자에게 고마워하고 있는 중이다.

멋스러운 2단계 열림창과 두드려 만든 울퉁불퉁하지만 고급스러운 수제 유리창이 볼 때마다 인상적이다. 모던한 외관과는 사뭇 다른 아치형 천정에는 연노란색의 색이 칠해져있고 아치형 굴곡에는 조각이 끝단에 수놓듯이 되어있다. 적당한 위치의 상들리에도 알맞다. 복도로 이어지는 단순한 둥근 원형 등은 열지어 배열하여 우아하다. 지금의 눈으로도 촌스럽지 않으니 당대에는 놀라운 시설이었을 것이다. 

계단을 오를라치면 화강석과 시멘트를 섞어 갈아서 만든 난간이 볼 만하다. 정면입구의 포치와 같은 모양으로 계단을 따라 육중하고 탄탄하게 오르고 있다. 구석구석 깊은 생각으로 매만진 흔적이 쉽게 찾아진다. 

내 눈에만 예쁠 리 없다. 추리의 여왕, 변호인, 박열, 택시운전사, 마약왕까지 이제 손가락을 넘을 정도의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었다. 

문화재는 2층까지였고 3층은 증축한 파란지붕 건물이었다. 3층을 두고 대단히 미학적인 증축이라 말하던데 백번을 봐도 나는 모르겠다. 내 눈에 뵈는 것은 3층의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나가는 2층 이마 부분의 타일의 안타까움이다.  세월을 감은 엔틱한 스크레치 타일은 80년을 훌쩍 넘기고도 여전하다. 비어있어 한적함에도 나이들어 퇴역한 분위기보다는 멋스러운 베이지 정장의 댄디한 모던보이가 보인다. 스크래치 타일이주는 세월입은 모던함의 힘이었다.
파란 하늘이 눈부신 어느날에는 옛 충남도청에 가보자. 아직 제 이름도 없이 밀어버리자는 구호 속에 서운했을 법한데도 신사는 당당하게 서있다. 

그 매력을 숨기지 못하고 파란모자를 살짝 눌러쓰고 나무지팡이에 회색 구두를 신고 추억처럼 한 사나이가 있다. 바라보면 송곳니까지 드러나게 멋드러지게 웃는다. 

이렇게 나는 사나이에게 반해버렸다. 대전에 오면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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