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준 한국기계연구원 연구위원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애가 어른들의 잘못으로 이렇게 희생되어야 하나요?” 수능 시험을 마친 고3생 아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한 어머님의 절규가 저민 가슴을 타고 해가 바뀐 지금도 강렬하게 들려온다.

50대 이상이면 거의 모두가 한 번쯤은 연탄가스 중독을 경험했을 것이다. 필자도 중학생 시절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져 있다 깨어난 적이 있다. 생사의 갈림이 사소한 무지와 무관심으로부터 올 수도 있었지만 사회적 대책을 기대하기보다는 누군가의 실수로 인한 개인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곤 했던 시대였다.

구들에 의한 우리 민족 고유의 온돌 난방은 구석기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에 와서는 점점 구하기 힘들어진 땔감 대신 연탄을 사용하는 연탄아궁이식 온돌 난방이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탄은 나무보다 불완전 연소가 일어나 일산화탄소 가스를 많이 생성하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구들의 갈라진 방바닥 틈으로 새어나온 연탄가스 중독 사고는 1970년대까지도 큰 사회적 문제로 이어져 갔다.

이 때 소위 ‘새마을 보일러’로 탄생한 연탄보일러는 바닥 온수난방방식과 결합하여 연탄가스의 구들 누설에 의한 중독을 크게 줄인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기름보일러가 가정 난방용 보일러로 개발, 보급되어 가스 중독 사고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1980년대 초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가스보일러의 산업은 가스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급성장하였다. 국내 생산 판매량이 100만 대를 넘긴 2000년부터 다가온 10여 년 간의 정체기를 이겨낸 것은 치열하게 경쟁하던 가스보일러 제조 6개사 모두가 공동으로 참여한 연구개발로 인한 기술력의 향상 덕분일까? 2017년 판매량은 180만 대를 넘어섰고, 수출량도 30만 대에 가까이 다가섰다.

가스보일러는 열효율이 높고 이산화탄소는 물론 초미세먼지 주요 원인 물질 중 하나인 질소산화물(NOx)의 배출도 적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환경 친화적인 제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타 제조업의 어려움과는 달리 내수와 수출 모두 당분간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보급 초기의 가스보일러는 연소에 필요한 공기를 실내에서 취하고 배기가스는 배기통을 통해 외부로 배출하는 자연 배기식으로, 설치불량에 의한 가스 중독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1990년대에는 안전을 고려한 새로운 형식의 강제 급배기식이 개발됐다. 이외에도 적외선 불꽃감지장치, 공연비 제어 등 안전과 관련된 기술이 진일보했다. 그러나, 가스보일러 본체의 안전에 관한 기술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이번 강릉 펜션 사건을 보듯이 연통의 설치와 관리가 잘못될 경우엔 가스중독의 위험이 도사린다.

조사 내용을 보면 연통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공기가 들어가는 입구 부분에 벌집이 있었다고 한다. 연소용 공기가 가스보일러에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하였고 연소된 가스는 내부로 배출된 것으로 가스 중독 상황이 분명하게 설명된다. 사고가 생기면 큰 이슈로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는 다시금 유사한 사고가 생기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 보다 확실한 재발 방지를 위해서 제도적 방안을 제안해 본다.

우선, 연통의 설치와 정기 점검을 가스보일러 제조사와 판매 설치 대리점이 연계하여 책임지도록 하고 무자격자가 관여하지 못하는 방법을 제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연통을 규정대로 견실하게 설치하고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가스보일러 제조사는 의무적으로 일산화탄소는 물론 도시가스의 누설까지 감지하는 센서를 보일러 또는 그 주변에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 가스 누설이 감지되면 바로 경보가 작동하고 가스보일러의 운전이 중지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방법을 갖추려면 보일러 가격이 조금 오를 수 있겠지만 안전이 훨씬 우선이다.

공급자와 소비자가 동참하는 양방향의 정보 이동과 사물인터넷 적용 제품의 생산 등 가스보일러 산업에도 4차 산업 혁명은 성큼 다가오고 있다. 합리적인 제도적 대응으로 시대에 걸맞지 않는 불행한 가스 중독 사고가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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