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창] 한 장의 사진, 그리고 한 편의 소설
[금강의 창] 한 장의 사진, 그리고 한 편의 소설
  • 금강일보
  • 승인 2019.01.1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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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대전시민대학 이미지인문학 강사
모로코 카사블랑카 하산 2세 모스코 강변에서
 

 오늘, 뿌연 미세먼지만큼이나 내 영혼이 꽤나 진부해 보여 집 근처 영풍문고에 갔다. 오랜만에 맡은 책 냄새. 김유정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단편 한권, 2018년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한권, 건축가 유현준이 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한권, 그리고 ‘어디서 살 것인가’ 한권. 덕분에 그동안 철학수업에 갇혔던 세상에서 벗어났다. 사람인지 사물인지 모르는 세상에서 사람이기를 간절히 원하는 여자이야기였다. 사랑이란 이런 절박한 순간에 정말 힘이 될까. 어느 날 갑자기 눈사람으로 변한 한 여자와 세상이야기에서 밀려드는 슬픔과 연민의 멜랑꼴리.

“난처한 일이 생겼다. 징조같은 것은 없었다. 어쩐지 숨 막히게 느껴지는 목도리를 느슨하게 하고 일월 하순의 천변풍경을 바라보았다. 조심했는데도 손가락 위쪽마디의 절반이 부스러졌다. 무릎에 조그만 눈덩이들이 흩어졌다. (중략) 이제 어떡하지요? 그가 물었다. 이제는 밥을 함께 먹을 수도 없고 따뜻한 데로 들어갈 수도 없고. 그가 멈춰섰다. 이제 만질 수도 없는 거예요?”

그녀의 어린 연인 현수 씨는 그녀의 회사에 들어와 잠시 일했던 인턴이었다. 그는 대학 입학부터 박사과정을 수료하기까지 학자금대출로 충당했으나 졸업 후 학비를 갚는 대신 계속해서 채용에서 떨어지거나 계약직으로 채용된 뒤 계약이 갱신되지 않거나 비인간적인 대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일을 반복해왔다. 나이나 경력으로 보면 정규직으로 뽑혀야 할 사람이지만 인턴으로 채용됐다. 정규직 직원은 그녀를 포함해 셋뿐이었고 나머지 인원은 인턴사원들과 실습생들로 충원됐다. 그 후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그녀도 퇴사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수첩에 연도를 적어가며 앞날을 계획하는 습관이 있었다. 실직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의지할 사람은 없었다.

과거의 불행에 여전히 불안해한다면 그것은 그 불행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미래의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멜랑꼴리 파토스는 우울하고 슬프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외부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시각화시키는 작업이다. 감각으로 포착된 개별적인 현실을 우리 모두의 일로 확장시키는 일. 그것이 사진이든 소설이든 예술은 인간의 존엄과 현실의 부당함과 비극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에서 나오는 강렬한 메타 감정은 단순히 대중과의 교감을 위한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심연에서 나오는 내재적 공명이다. 한강의 소설을 읽으면서 니체가 말하는 ‘전사가 되기 위한 조건’을 생각해본다. 삶의 고통과 허기를 넘어서서 자유와 무한한 창조성을 잃지 않는, 주인의 도덕을 지닌 자만이 지혜의 월계관을 쓴다. 고통을 통과할 때 삶의 크기와 깊이도 확장된다고 말하면 너무 무책임한 것일까.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본다. 가난한 모로코의 사람들, 그들은 바람과 강과 이웃들과 행복해 보였다. 무엇이 진정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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