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

 
김영호

대전시는 시 출범 70주년과 광역시 승격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미래상으로 ‘문화융성도시 대전’을 비전으로 내세우며, ‘2019 대전 방문의 해’를 계기로 ‘다시 찾고 싶은 대전형 관광모델’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작년 11월 발표했다.

12월엔 서울에서 ‘2019 대전 방문의 해’ 선포식과 서포터스 발대식을 갖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홍보활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새해를 맞은 시민들은 과연 많은 외지인들이 대전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고 여행의 풍취를 마음껏 누릴 것인지 별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대전시는 준비 부족을 시인하고 일회성 이벤트 행사가 아닌 연속사업으로 앞으로 3년간 ‘대전 방문의 해’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2022년부터 대전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열겠다며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늦게나마 현실을 인정하고 범시민추진위원회 구성과 다양한 관광 콘텐츠 개발로 내실을 기하게 됐으니 다행이다.

개인적으론 새로운 관광 브랜드로 추진되는 ‘단재 신채호의 얼 살리기 사업’이 가장 기대된다. 2004년부터 매년 한 지역씩 선정하고 있는 ‘지역 방문의 해’ 사업은 지역 나름의 고유문화를 바탕으로 한 지역관광 활성화사업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볼거리나 즐길거리가 큰 차별성을 갖기 어려워 한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일반 시민들이 널리 알고 있는 지역의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그 유적들을 연결하는 스토리텔링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대전의 대표적인 역사적 인물로는 조선시대의 뛰어난 한글소설 ‘구운몽’의 작가 김만중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를 들 수 있다.

‘몽자류 소설’의 효시인 ‘구운몽’은 꿈과 현실, 그리고 다양한 종교사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상상력으로 오늘날의 판타지 소설 못지않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김만중의 삶의 터전이 대전 전민동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그가 귀양살이를 한 남해가 서포문학관을 설립하고 김만중 문학상을 제정하는 등 그 업적을 크게 살려나가는 것과 대조돼 안타깝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독립운동에 헌신한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로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서훈됐다. 그의 유명한 어록들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 등이 있으며, 남에게 고개 숙이는 것이 싫어 옷이 다 젖어도 똑바로 서서 세수한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중구 어남동 도리미 마을에서 몰락한 양반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곱 살에 부친이 별세한 뒤 여덟 살에 할아버지가 청원군 고두미 마을로 이사하면서 그의 유해도 고두미에 묻혔다. 충북에서 단재를 기리는 각종 사업이 활발한 데 비해 대전은 그의 얼을 되살리는 작업에 소극적이었다. 대전 방문의 해를 맞아 얼과 혼이 담긴 대전의 문화유산 살리기 작업의 일환으로 ‘단재’의 얼 살리기 사업이 대전의 새로운 관광 브랜드로 선정됐으니 다행이다.

단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으나 이승만의 외교독립론과 미국의 위임통치 주장을 비판하며 이에 동의한 안창호를 성토하면서 임정을 탈퇴, 무정부주의 단체에 가담해 활동하며 역사서 연구에 몰두했다. 몇 년 전 크게 인기를 끈 영화 ‘암살’과 ‘밀정’에 등장해 관심을 끈 의열단의 단장 약산 김원봉이 단재를 찾아와 아나키즘에 입각한 민족해방운동론을 정립해 달라는 요구로 쓴 선언문이 바로 ‘조선혁명선언’이다.

이런 의열단 배경의 영화들을 편집해 단재와의 관련성을 살려 스토리텔링하면 단재의 이미지 대중화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대전형무소에서 가장 오래 수감됐던 독립운동가인 심산 김창숙과 의열단장 김원봉이 신채호가 이승만과 안창호의 처사를 극렬하게 성토한 ‘성토문’에 함께 서명했고, 대통령 이승만의 탄핵으로 비화되는데 이 또한 흥미로운 이야기다.

나아가 단재와 의열단, 의열단원들이 나온 신흥무관학교 등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을 기획공연한다면 많은 관광객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중촌동 대전형무소는 몽양 여운형과 심산 김창숙 외에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유명한 신영복이 16년의 영어생활을 한 곳이다.

이런 사연들을 잘 엮어 대전형무소와 산내 골령골 평화공원, 단재 선생 생가로 이어지는 역사탐방코스를 개발한다면 역사적 아픔을 평화로 승화시키며 교훈을 되새기는 여행, 이른바 ‘다크투어’의 전국적 명소로 살려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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