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사회를 그릴 필요는 없다

한 해를 마무리하거나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는 언제나 반복되는 것이 있다. 한 해 동안 한 일들을 돌아보고 새로운 해에 될 것과 할 일들을 그려본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그렇게 하기 시작하였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는지 모르겠다. 지나간 현실에 대한 성찰과 앞으로 올 이상에 대한 희망과 그림을 그리는 것. 그것을 좀 더 크게 말하면 앞으로 오게 되는 이상사회, 이상세계를 꿈꾸는 것이라고 하여야 할까?

크게는 국가와 세계 차원에서, 좀 작게는 지역과 가정과 정당과 학교나 어떤 직장단위에서 이상을 그린다. 크게 말하면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고 소박하게 말하면 좀 더 나은 생활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상사회를 그릴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없기 때문이다. 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국이니, 서방정토니, 극락이니, 새 예루살렘이니 하는 말들은 사실상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 대신 현실을 가만히 살피고 따져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 동안 우리 인류의 역사에서 유토피아를 노래한 글들이나 말들이나 바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당시 그렇게 꿈꾸던 것들이 거의 다 실현된 것들이 많다.

그러한 것들을 꿈꾸던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탁월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맘이 푸근하고 안락하며 행복한 순간을 산다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을까? 여기가 바로 극락이요 천국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까? 아니면, 아직도 그러한 세계는 미래 어느 때나 올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살까?

요사이 우리는 어마어마한 충격 속에서 산다. 너무나 크면서도 너무나 가까이 있는 아주 놀라운 일들이 매일 매 순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언론에 공개되는 몇 몇 곳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생활영역 전체에서 일상으로 일어나는 것이 바로 그 부분이다. 폭력이다. 아주 아름답고 행복하고 좋은 것으로 포장한 언어들과 생활단위 속에서 몹시 충격스런 더럽고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이니까, 식구끼리니까, 우리 사이니까, 조직을 위하여, 국가의 명예를 위하여 따위의 온갖 아름다운 말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추태들과 폭력들. 스포츠계나 예술계나 학계나 종교계나 정치계나 사사로운 직장 안에서나 할 것 없이 무서운 폭력들이 화려하게 활동하는 것을 확인한다. 그것들이 언론에 등장하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기 이전에 이미 실제 생활에서 공공연하게 생활문화로 공기처럼 가득한 것들이다.

폭력! 언제부터 폭력이 우리 생활에 등장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랑의 이름으로, 친밀감의 이름으로, 더 잘 기르겠다는 명목으로, 너를 잘 되게 하겠다는 말로, 아낀다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당한 적이 얼마나 많던가? 너무나 오래, 너무나 어려서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어떤 폭력도 폭력으로 인식되지 않고 당연한 삶의 한 과정으로 여겨오게 되었던가?

그래서 폭력을 휘둘러도 그것이 폭력인지 모르고, 폭력을 당하여도 그것이 지극히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느낄 수 없이 돼버린 폭력의 생활문화. 가끔은 낯선 이에 대한 폭력은 폭력이지만, 낯익은 자에 대한 것은 온갖 아름다운 말들로 위장되어 전혀 폭력이 아닌 것처럼 둔갑하여 행세되었던 것. 그래서 심지어는 폭력성을 잘 나타내야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처럼 인정되는 문화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폭력은 어떠한 폭력이든 인간의 가장 깊고 높은 존엄을 처참하게 파괴한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 자신도 물론 스스로 자기의 인간존엄성을 파괴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지만, 폭력을 당한 사람은 전혀 자신의 상태나 의지나 그 무엇과도 상관없이 인간의 가장 존엄한 것을 손상당한다.

무엇으로도 보상되지 않는, 치유될 수 없는 크나큰 상처를 입는다. 어떤 영광과 영예로도, 상장과 상금과 칭찬으로도, 높은 자리와 사회의 놀라운 찬사와 환호로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부러울 정도의 성공사례를 가지고도 폭력으로 입은 상처는 보상될 수 없는 지대한 처참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 슬픈 일이다. 어디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이 없다.

우리 사회는 내가 판단하기에 폭력의 공기가 나쁜 날의 미세먼지처럼 우리 사회 전체를 질식시키고 있다. 말폭력, 조직폭력, 문화폭력, 법에 의한 폭력, 행정과 조직과 제도에 의한 폭력, 감정과 정서상의 폭력, 전통과 관행의 폭력들이 그냥 일상생활에서 숨 쉬듯이 아주 태연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어찌할 것인가? 법으로 막을 수 있을까? 행정으로 처리될 수 있을까? 어떤 감시체계가 철저하면 극복될까? 사실 지금은 어디를 가나 공공한 곳에는 감시카메라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 전체를 불신사회로 보는 한 공식장치다. 그것으로 해결될까?

최근에 일어난 놀라운 폭력에 대한 폭로들. 그것에 대하여 잠시 언론과 정치계와 그 관련기관들이 충격에 빠지면서 좀 호들갑스럽게 논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런 속의 내밀한 폭력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완전히 폭력이 사라지는 이상사회가 올 것이라고 꿈 꿀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폭력은 어떤 폭력이든 폭력이라는 인식과 의식이 확장되는 운동이 지속되면 좋겠다. 폭력을 처벌하는 어떤 법 규정이 세밀하게 나와야 하겠지만, 그러기 전에 온갖 생활부문에서 폭력에 대한 논의가 들풀처럼 바닥에 깔리도록 지속되는 활동이 펼쳐지면 좋겠다.

당연하다고 느꼈던 폭력들이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악랄한 행위라는 인식과 의식이 퍼지게 하는 운동이 전개되면 좋겠다.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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