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호 대전 동구청장

황인호 대전 동구청장

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원래 증기기관은 광업에서 쓰였으며 1693년 토머스 세이버리가 갱도의 깊은 곳에 있는 물을 퍼 올리는데 사용되는 양수펌프를 개발했다. 이어 1712년 토머스 뉴커먼이 이를 실용화시켰지만 열손실이 크고 많은 양의 석탄을 소모하는 등 문제점이 많았다. 이를 보완한 사람이 제임스 와트다.

증기기관은 전 유럽에 산업혁명을 불러왔다. 광산에서는 더 많은 양의 석탄을 캐고, 방적공장에서는 기계화를 통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증기기관차에 차량을 연결하여 대량의 제품을 원하는 목적지까지 빠르게 운송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기차와 철도의 시작이다. 1825년 영국의 스톡턴과 달링턴 사이 약 40㎞ 거리에 세계 최초의 철도가 놓여진다.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는 아쉽게도 일본의 침략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1899년 9월 18일 일본이 경인선 즉, 제물포-노량진 간 33.2㎞ 구간의 철도를 개통한 것이 최초다. 9월 18일은 원래 철도의 날이었으나 일제 잔재라는 비판에 따라 2018년부터 6월 28일로 변경됐다. 이 날은 1894년 대한제국 철도국이 창설된 날이다.

이후 일본은 군사적 목적과 경제 수탈을 위해 본격적으로 철도를 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울-부산 간 445.6㎞ 구간의 경부선이 1905년 1월 1일 운행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대전역의 시초다. 이후 대전역은 1914년 호남선 개통을 계기로 삼아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게 된다.

해방이 되고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대전역이 인민군의 수중에 넘어가면서 미 24단장인 윌리엄 F. 딘 소장은 포로가 되고 만다. 이때 고(故) 김재현 기관사가 딘 소장을 구출해 내기 위해 ‘미카3 129’ 기차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었다가 장렬히 순직하고 만다.

이후 우리나라 철도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눈부신 발달을 거듭해 왔으며 그 중심에는 대전역이 있었다. 2004년에는 고속철도가 대전을 거쳐 서울과 부산 사이 운행을 시작했다. 2009년에 흔히 쌍둥이 빌딩이라고 부르는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철도시설공단 사옥이 지어지고, 본사가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대전역은 명실 공히 우리나라 철도의 본산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평양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6·25전쟁 발발로 운행이 중지됐던 남북 간 철도인 경의선 재개도 주목받고 있다. 파주 임진각에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표지판이 있는데, 그 염원이 이뤄진다면 유럽까지 철도실크로드를 통해 곧장 연결이 된다.

대전역을 출발한 열차는 유라시아를 거쳐 파리까지 8일이면 도착한다고 한다. 돌아오는 기차엔 아마도 호기심 가득한 유럽의 관광객들이 가득 들어차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대전은 환상적인 곳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다시 찾게 해야 할 것이다.

대전 동구는 대전역에 국립철도박물관과 호국철도공원을 조성하여 고 김재현 기관사의 고결한 희생정신과 윌리엄 딘 소장의 기개를 전 세계인들에게 알릴 계획이다.

아울러 대한민국 1호 식장산 숲정원과 전국 최장의 26.6㎞ 벚꽃길을 연계하고자 한다.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우암사적공원과 이사동 한옥마을도 자랑할 만하다. 대전방문의 해를 맞아 이런 노력들을 통해 대전은 외국인들이 그냥 스쳐지나가는 곳이 아닌 머물고 즐기는 곳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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