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대전 대덕구청장

취임 100일에 즈음해 주민에게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책을 빌려주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한 주민이 정약용 선생이 지은 목민심서를 골라와 필자가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이 대덕구의 방향’이라고 책갈피에 적어 건넸다.

‘백성은 가난함을 걱정하기보다는 불공평함에 분노한다’는 뜻의 이 글귀는 필자가 시민운동가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슴깊이 새기고 있는 철학이면서 소신이다. 6·25동란으로 많은 것을 잃은 대한민국은 역동의 산업화 시대와 고도의 정보화 시대를 거치며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란 눈부신 외적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는 사이 속으로는 ‘경제적 양극화’와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국민의 갈등과 불만의 골은 깊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회시정연설에서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불평등이 그대로 불공정으로 이어졌고 불평등·불공정이 우리 사회의 통합을 해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대전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자치구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고착화돼가며 주민의 생활수준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도시발전의 편중 심각성으로 지속가능한 도시성장 동력에 힘이 실리지 않고 사회통합도 가로막히는 모양새다.

시민들은 살기 좋은 도시의 조건으로 편리한 교통, 다양한 문화편의시설, 양질의 의료시설과 훌륭한 교육 환경 등을 꼽는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적절히 잘 어우러진 도시환경이다. 현재 ‘르네상스’가 펼쳐진 서구와 유성은 차고 넘치고 과거 황금기를 보낸 동구와 중구는 과거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아직 그 명목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원도심도, 현재의 신도심에도 끼지 못하는 대덕구는 상대적으로 빈약하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대덕구의 허리쯤에 해당되지만 그동안 방치돼 온 신대동, 연축동, 읍내동이 변화의 기회를 잡았다. 회덕IC 건설, 충청권광역철도 1단계사업 등 국책사업을 비롯해 효자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과 대전시장 공약사업인 제2대덕밸리 첨단산업단지 조성까지 굵직한 각종 사업들이 추진될 예정이지만 하드웨어에 치우친 점이 아쉽다.

대덕구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적절히 잘 어우러진 도시환경 조성이 매우 중요하다. 대덕구는 익히 알려진 대로 흔한 영화관 하나 없는 문화 불모지다. 평생학습센터를 건립해 그곳에 공공영화관을 조성하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대전시에 건의했으나 이마저도 이루지 못해 지역주민의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반백년 동안 대전야구의 성지였던 야구장이 새롭게 둥지를 틀 부지가 오는 3월이면 결정된다. 대덕구는 신대동을 후보지로 유치경쟁에 나섰다.

지자체 간 과열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 또한 필자도 익히 잘 알고 있다. 단순하게 야구장 하나 가져오자고 뛰어든 것도 아니다. 대덕구의 이 같은 노력은 번번한 문화체육시설 하나 없는 문화 불모지의 오명을 벗어 대덕구민의 목마른 갈증을 풀어드리기 위함이고, 그동안 차별(소외) 받아온 것에 대한 정당한 요구이면서, 살기 좋은 도시를 꿈꾸는 새로운 대덕을 위해 필요한 절실함의 표출이다.

신대동 후보지는 매우 저렴한 부지매입비와 더불어 야구장 개장 예정인 2025년에 교통편의성과 접근성이 여타 후보지에 비해 오히려 낫거나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새 야구장의 입지 조건으로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다. 특히 야구장을 짓기 위한 별도의 인공지반 조성이나 시설 철거가 필요 없어 여러모로 이점이 있는 곳이다.

허태정 시장은 새 야구장 입지 조건으로 ‘지역균형발전’을 언급했다. 최종 후보지 선정에 있어서도 편협한 잣대나 정치적 유불리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실현 가능성이 확실하지 않은 앞날까지 미리 예단하면서 결정지을 문제도 아니다. 승자나 패자, 그리고 대전시민 모두가 깨끗하게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지역의 불공정·불평등, 지역 간 갈등 해소, 대전의 균형발전 실현은 대전시장이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다. 150만 대전시민이 대전시장의 리더십에 주목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통해 불평등과 불공정 해소를 외쳤던 이유, 정약용 선생의 ‘불환빈 환불균’ 철학정신을 되새겨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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