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수집·노점상 등 미세먼지에 그대로 노출

15일 대전 중구 한 고물상. 허리를 굽혀 힘겹게 모은 폐지를 리어카에 싣고 걸어가는 최 모(83) 할아버지의 모습은 낡고 기울어진 수레바퀴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두 발 달린 주황색 리어카엔 ‘보물같은’ 종이 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고물상을 매일같이 드나드는 최 할아버지는 새벽 5시부터 나와 동네를 돌았지만 두 손에 건진 건 5000원 정도에 불과하다. 최 할아버지는 “폐지를 팔아 한 달에 버는 돈은 10만 원 남짓”이라며 “몸이 아파도 어지간해선 병원엔 안 간다”고 했다. 병원비와 약값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도 버티기 힘든 뿌연 미세먼지와 추위 속에서도 하루 끼니를 벌기 위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최 할아버지의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워 보인 이유다. 최 할아버지의 얼굴엔 그 흔한 마스크가 없었다.

고물상 주인 이 모(62) 씨는 “2~3년 전엔 하루에 10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폐지를 주워 왔지만 요즘은 그 수가 점차 줄어드는 것 같다. 며칠간 고물상에 온 폐지수집 어르신은 3~4명 정도였다. 미세먼지 탓이 큰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3면

전국고물상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폐지 수거 근로자 수는 전국적으로 약 170만 명에 달한다. 70대 이상의 고령으로 정부보조금 이외에는 마땅한 생계 수단이 없는 어르신이 대부분이다.

전국 65세 이상 고령 인구 711만 명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어르신의 경우 호흡기가 약하기 때문에 미세먼지는 그야말로 치명적이지만 마땅한 생계 수단이 없어 거리로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이들은 외부활동을 자제하라는 주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미세먼지로 뒤덮인 거리로 나서고 있다.

15일 오전 9시 기준 충남의 미세먼지 농도는 133㎍/㎥, 세종은 130㎍/㎥, 대전은 127㎍/㎥를 기록했다. 1급 발암 물질로 분류된 미세먼지가 대부분 지역에서 매우 나쁨 수준을 보였다. 미세먼지로 인한 생존권 위협은 길거리 노점상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전 서구 둔산동의 길거리에서 찰옥수수, 군밤 등을 파는 김 모(67) 할머니의 고민은 짙은 미세먼지만큼 깊었다. 김 할머니는 미세먼지에 대비해 마스크를 가져왔지만 차마 착용하진 못 했다. 가뜩이나 미세먼지 공포가 커졌는데 마스크를 쓰고 노점에서 음식을 팔면 길거리 음식에 대한 우려만 더 키워 장사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요즘 장사도 잘 되지 않아 어려운 형편에 미세먼지 때문에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며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로 시민들은 아예 길거리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간다”고 하소연했다.

지자체가 이틀 연속 계속된 미세먼지 특보 발령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하는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시행했지만 서민생활을 전반적으로 보듬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지난해 미세먼지 취약 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을 수립했지만 무산돼 지원 여력이 크지 않은 상황”이라며 “올해는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는 만큼 추경을 통해 예산을 확보할 계획이다. 미세먼지 취약계층인 어르신들을 위한 마스크를 비롯해 안전용품을 확보하고 공기정화장치 설치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성룡 기자 drago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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