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대전공고 교사

김지숙

 

이전 학교에서 선배 교사가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를 주셨다. 1000쪽이 넘는 양장본이 흐물흐물 낡았다. 아이가 고등학교 내내 여러 번 읽었다고 한다. 여러 모로 뛰어난 그 아이는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미국 컬럼비아 의대생은 일종의 소설 창작 수업을 꼭 들어야 하는데 환자에게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말할 필요가 있으며 스토리를 엮어 나가는 능력이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역량을 키워 진단 및 치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다.

둘 다 이야기 이해 능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최승필의 ‘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 2018)은 의미 깊다. 실제 독서논술을 지도하며 목격한 결과,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 중1, 고1의 변동 구간을 맞을 때마다 학업 성적이 자신의 읽기 능력에 맞는 제자리를 찾아간다고 한다. 왜냐하면 공부란 교과서라는 책을 읽고 이해하는 형식인데 이야기책 읽기와 교과서 읽기는 머릿속에 집 짓는 개념화 훈련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며 학습 능력이란 곧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독서를 재미없어 하는 것과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읽어도 이해 못하는 능력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질 좋은 독서 습관 없이 듣는 공부 위주인 사교육에 의존해 온 아이는 읽고 이해하는 학습 경험과 극단적으로 멀어지고 결국 고등학생이 되면 시간과 능력이 부족해 양적 질적으로 달라진 학습내용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 간단한 글조차 이해할 수 없는 국내 중장년층이 OECD 22개국 중 3위로 많은 국가(2014년)가 되게 한다.

아이의 수준에 따라 동화나 청소년 소설에서 시작하되 천천히 정독하고 이해될 때까지 반복해서 읽는 것을 기본으로 국어능력 진단 결과에 따른 ‘공부머리 독서법’ 14가지를 제안한다.

이야기의 논리를 내면화하는 경험을 반복하기 위해서 아이가 재미있어 하는 책을 읽게 할 것을 특히 강조하는데 문유석 판사의 ‘쾌락독서’(문학동네, 2018)는 아이들의 책읽기 방향이 될 만하다. 자신의 독서경험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펼치며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으니 자신의 기준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책읽기를 찾아야 한다고 외치는 그의 독서이력은 유별나긴 하지만 이야기책 읽기의 힘을 보여준다.

예비 고1 아이가 있다. 사교육을 받지 않아 청정한(?) 성적표. 일반고 진학이 걱정스러웠는지 놀며 공부한 만학 중3 수포자 외길. 일반고 배정을 앞두고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죽음의 성물’ 코스에 도착, 완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야기책 독서의 위력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례가 되려는가? 지구에 없는 마법학교에 진학하려는가? 이 아이는 내 집에 살고 있다.

모두가 의사, 판사가 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모두가 행복한 독서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로 잔소리할 입은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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