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작가, 한국문인협회 이사

 

 

오늘은 2019년을 맞은 지 스무하루째 되는 날이다. 그러나 음력으로는 아직도 무술년 섣달 열엿새, 양력으론 한 해가 바뀌었지만 음력으로 설을 맞으려면 아직 보름이 남아 있다. 그렇게 양·음력으로 두 번 새해를 맞다 보니 그 텀이 한 달이나 된다. 해마다 되풀이되지만, 그 때문에 송구영신하는 기간이 그만큼 길어지는 셈이다. 물론 세월을 의식하며 초긴장하는 삶만을 살 순 없지만 요즘처럼 불확실한 세상에서 한 해가 바뀌는 시점에서의 하루하루는 걱정스럽기만 하다. 오히려 깊은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다. 국내외적으로 염려스런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핵 폐기를 전제로 한 남북문제가 안개속이고, 북미관계·북중관계 역시 그 향방을 가늠할 수 없어 불안하다.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 노동 문제가 작년에 이어 올해 우리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도 불분명하고, 미중 무역전쟁 여파는 물론 중국의 IT·자동차산업 성장 등이 몰고 올 파장 역시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다시 5·18 광주사태의 전말을 따지려는 문제도 아픈 상처를 건드는 것 같다. 거기다 해마다 되풀이되던 지방의원 외유 문제까지 한몫 끼어들고 있다. 국민 세금을 펑펑 써대는 관광성 외유도 가당치 않은데 폭력과 성매매 등의 파장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또 한쪽에서는 남북평화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고 들떠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크게 염려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핵 폐기는 단순하지 많다. 그리 쉽게 풀 수 있는 방정식이 아닌 건 분명하다. 여기다가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에 진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상황 속에 노사갈등이나 과잉복지가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더구나 갈수록 심화되는 보수·진보간 첨예한 대립 속에 우리의 일년이 또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을 불허하게 한다.
한 해를 시작하는 기해년의 출발점이 보다 희망차고, 넉넉할 순 없을까? 상호간에 따뜻한 품성을 공유하고, 상대를 배려하면서 덕담을 주고받으며 한 해를 설계할 수 있는 설이었으면 참 좋겠다. 자기 동포끼리 합쳐지지 못하고 남북이 갈라진 채 주변국의 영향력에 휩싸인 채 70년 넘게 새해를 맞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통일된 조국에서 설날 아침 흩어졌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들께 차례를 올리며 가족간 화합과 동기간 우애를 다질 수 있는 그날이 언제 올지 유추하며 나름 시나리오를 써본다.

매스컴에선 황금돼지해를 맞아 만복이 찾아오는 해라고 하고,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민족의 자주독립과 정체성을 국민들에게 누누이 각인시키면서 새해를 뜻깊게 맞자고 하지만, 국정 문제가 산적해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 시점에 필자는 간절히 기도하고 싶은 제목을 세 가지 정해본다.

첫째, 새해에는 국민을 한데 묶는 구심점을 세울 수 있는 정치를 펴주길 바란다. 과거사를 바로잡는다면서 미래를 향하는 비전이 보이는 정치와 상반되고 있다. 이러다간 한 발짝 앞으로 나가는 정치보다는 내내 과거에만 머무는 문재인정부가 될까 걱정스럽다. 둘째, 북한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남북관계를 조성해 주길 바란다. 북한의 변화된 모습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데 남쪽에서만 큰 평화의 끈을 잡은 듯 들떠 있으니 그게 문제다. 북한은 몇 수를 앞선 채 대한민국을 소리 없이 흔들려고 하는데 우리 측만 무장해제를 한 상태라고 말한다면 심한 표현일까? 셋째, 경제적으로 좀 더 개선되길 희망한다.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다간 국가경제가 거덜날 것 같은 위기감이 느껴진다. 일자리를 서둘러 창출하고, 선심성 복지는 멈춰야 한다.

이제 보름 후면 설이다. 가족이 모여 제사 음식을 정성껏 만들고 떡국을 끓여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난 후 성묘도 하고 집안 어른들께 세배를 드렸던 유년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못살고 배고프던 시절이었지만 요즘처럼 팍팍한 명절이 아니었다. 비전이 있었다. 음식을 먹으며 덕담을 나눴고, 부모에겐 효도를, 나라를 위해선 충성한다는 덕목을 중히 여기면서 미래를 설계했다. 이번 설날엔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희망찬 덕담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보름밖에 남지 않았지만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의 결단에 찬 메시지가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미래를 위한 희망편지를 쓰는 설날이 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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