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이정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작년 3월 원자력안전규제정보회의에서 당시 강정민 위원장이 안전규제기준 강화를 언급한 후 현재까지 관련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국민적 우려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으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원안위 사무처의 지나친 행정만능주의적·전시행정적 기준 강화 추진은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강 위원장은 기준 강화를 위해 주기적안전성평가승인제 도입 등 8개 항목을 검토한다고 했다. 또 경주(4월 24일)·서울(6월 5일)에서 공청회를 개최했고, 6월에는 지역별 설명회와 함께 별도의전문가 심층토론도 진행한다고 했다. 당시 손명선 안전정책과장은 “원전지역 주민, 시민단체 등의 다양한 의견을 활발한 논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종합·도출하고, 6월 말 원안위 심의·의결을 통해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일정까지 제시된 기준 강화에 대해 ‘전시행정’이라고 우려한 이유는 국민의 생명이 달린 사안을 석 달 만에 종결짓겠다는 것 자체가 충분한 기술적 논의를 보장하기 어렵고, 합리적인 다양한 의견 수렴도 어렵게 하는 것인 동시에 업무 성격도 모르는 무능함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작년 4월 24일 경주 공청회는 손 과장의 안전기준강화(안) 발표 후 패널들의 의견 개진, 질의·응답으로 진행됐고, 초안을 손 과장이 작성한 것처럼 발표했는데, 그는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닌 ‘행정가’임에도 전반적인 작업을 주도한다는 인상을 줬다. 또 패널들에게 주어진 5분간 어떤 의견과 답변이 오갈 수 있으며, 분야별 전문가도 참석하지 않은 채 많은 청중이 질의할 기회도 얻기 힘든 ‘한 번 이런 게 있다고 발표하는’ 수준이었다. 당일 발표된 기준조차 전문가들 사이에 충분한 사전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공청회를 했지만 어떤 질의들이 나왔고, 어떻게 초안에 반영됐는지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보고된 내용도 없다. 어떻게 3개월 안에 강화된 기준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것인가? 당시 언론들의 반응 또한 충분한 논의과정이 필요함에도 일시적으로, 그리고 단순 전시행정적인 기준 강화라는 우려가 많았다.

지난해 9월 18일 서울에서 공청회가 열렸는데, 핵주기시설안전기준·생활방사선기준·고유기술기준이란 용어가 새롭게 등장했다. 6월에 통과시킨다고 했던 종합대책에 새 기준들이 9월 공청회에서 추가된 것이다. 원안에 중요한 내용들이 누락됐으니 스스로 원안이 부실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또 영광(9월 20일), 울산(10월 4일) 설명회 계획이 발표됐다. 그런데 영광 설명회는 개최조차 못했다. 원전도 없는 서울에선 공청회를 하면서 일방적인 설명만 듣는 지역 설명회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영광·울산 설명회는 연기돼 울산의 경우 공청회로 변경해 겨우 개최됐지만 논의된 내용이 어떻게 반영됐는지 전혀 설명도 없다. 영광에선 파행으로 끝났다. 공청회로 진행한다고 해 놓고 공문은 토론회로 보내와 이에 항의가 들어오자 이틀 남겨 놓고 현수막만 공청회로 바꿔 놓으니 공분한 주민들이 행정절차법에 따라 공식적으로 진행하라고 요구했는데, 지금까지 답변도 없다.

결국 종합대책 확정은 미뤄지며 해를 넘겼고, 1월 10일 열린 8개 시민단체와의 간담회는 언론과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하지도 않았는데, 이러고도 원안위는 ‘작년에 다섯 차례의 전국 설명회·공청회를 통해 국민과 지역사회, 시민단체와 학계의 의견 수렴을 다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심각한 거짓말이 아닐 수 없으며, 이것이 원안위가 말하는 안전을 위한 소통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이를 근거로 현재의 부실한 종합안전대책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이는 원천무효다. 원안위 사무처 공무원은 스스로 기준 설정에 한계가 있으므로 전문가들 사이에서 분야별 공개 논의가 사전에 충분히 진행되도록 하고, 이후 시민 의견 수렴과 소통을 통해 최종 결정되도록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현재의 부실한 종합대책에 국민의 귀중한 생명을 맡길 수 없다. 원안위는 지금이라도 부실한 졸속 행정만능주의를 배격하고 공학적으로 타당하고 내실 있게 국민 안전을 다른 어떤 것보다 최우선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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