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한남대 총동창회장, 전 대신고 교장

 
박영진

세 살짜리 외손자가 집으로 온다는 연락이 왔다. 모처럼 집 안팎을 대청소하고 안방에 이불을 깔아두고 손님을 맞았다. 외갓집 식구들이 낯설기 때문인지 어린 손자는 제 엄마 옷자락을 놓지 않고 붙어 다녔다. 시간이 흐르니 엄마 치맛자락을 놓고 우리들 품에 안기기도 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잠시 후 거실에서 안방으로 들어가는데 '쿠당탕' 하는 소리가 들려 달려가 보니 아기가 넘어졌다.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을 밟으면서 미끄러진 모양이다.

이마 한쪽이 불그레하게 변했다. 얼른 안아주며 괜찮다고 이마를 쓰다듬었더니 울음보를 터뜨렸다. 제 할머니가 안으며 “뚝 해야지. 울면 바보야”라고 달랬다.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자 딸아이가 뛰어와 “우리 아가 많이 아프지. 누가 그랬어?”라며 방으로 들어가 “떼찌” 하고 이불을 때렸다. 그러니 아이도 제 엄마를 따라 이불을 한 대 때려주곤 울음을 멈췄다. 딸아이는 아기의 양말을 벗기지 못한 것이 자신의 실수라며 아기에게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하며 연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아내는 이불을 깔아둔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얼른 이불을 갠 뒤 아기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우리 장군이 울지도 않고 잘 참는구나”라며 외손자를 칭찬했다.

최근 대전에서 일어난 김소연 시의원 사태를 보며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는 지난 2016년 말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으로 일어난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이 탄핵 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그리고 이듬해 5월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41.1%의 득표율로 당선돼 대통령에 취임했다. ‘나라다운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이 모여 새 대통령을 선출하고 국정을 맡긴 것이다.

촛불혁명의 요구였던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과 함께 국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면서 새 정부가 들어섰다. 이어 다음해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출했다.

대전에선 시장과 5명의 구청장, 그리고 비례대표를 제외한 19명의 시의원 당선인 모두 더불어민주당 출신이다. 아마 대전지역 선거사상 특정 정당의 후보만을 선택해 지방자치를 맡긴 건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그만큼 시민들은 민주당에게 큰 신뢰를 보냈다.

이는 새로 출범한 정부와 집권당에 밝고 투명한 사회,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 분배가 공정하게 이뤄지는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을 간절히 염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방선거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구태의연하게 금품이 수수되며, 불법 선거가 이뤄졌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젊은 김소연 변호사는 시의원 후보로 집권당에 영입됐다. 그녀는 민주당이 이뤄낸 민주주의와 촛불혁명, 문재인 정권 창출에 이르기까지의 훌륭한 성과를 지켜내는 데 일조하고 싶다며 시의회에 진출했다. 그리고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자신을 도운 사람으로부터 법정 선거비용 이외의 금품을 요구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정치신인인 김 시의원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우리 정치풍토가 깨끗해지길 바라며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많은 시민은 그녀의 용기 있는 결단에 힘찬 박수를 보내며 새로운 정치풍토가 조성되길 바랐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를 해당(害黨) 행위로 간주해 김 시의원을 제명, 이제는 무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이 다소 미흡하고 매끄럽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를 바라보고 수용하는 기존 정치권의 시각이 여전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시민들은 크게 걱정하고 있다.

우는 아기를 대하는 아내와 나의 태도는 울음을 그치게 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울음소리를 더 키웠다. 그러나 엄마인 딸아이는 아기의 요구에 공감하면서 이불을 야단치고 자신이 미안하다며 아기를 달랬다. 엄마한테 위로를 받은 아기는 금세 울음을 그쳤다. 이런 일을 겪으며 어른들이 먼저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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