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도

이름

한영수

장례식장 와서야 알았다 유순이
데친 나물 같은 이름

제 이름 찾아서 좋은가
종이 접시 몇 놓인 제상인데
비스듬히 웃고 있다
첫 월급 턱으로 속셔츠 한 장에
나까지 챙겼나, 눈물 비치던 여자

자식 없던 노봉할아버지 난봉질 끄트머리
씨황소 고삐 따라 온 여자
섬진강 아홉 구비 돌아온 여자
써럭초 연기를 잘도 먹었지
막걸리 한 사발을 밥보다 즐겼지
백중 밭고랑 불볕 녹이던 여자
밤도망도 했지 찬바람 불면
옆구리가 먼저 시리다는 여자
단풍보다 붉은 입술로
씨 다른 아이를 셋이나 들이민 여자

뭐 할라고 왔나,
넌지시 반기는 웃음이다
화장해 뿌리라, 유언이
저녁 빛에 젖는다
나설 때는 혼자여도
가다보면 길동무도 만나겠지
육백 리 물속 굽이쳐서 하동포구 빠져나가는 유순이

잠깐 돌아본다 이름 같은 것 쓸데없다,
새 웃음 비친다

▶ 지난해부터 부모님 사시던 시골집에 다녀옵니다. 그동안 두 분 돌아가시고 난 뒤 10여 년도 더 방치해 뒀던 집입니다. 명절 때 성묘하러 가서도 마당에서나 서성대다 올 뿐 방문 한 번 열어보지 않았던 집입니다. 그 집에 얽힌 애증이라는 양가적 감정이 삭아 내리기까지 10년 세월이 걸렸나 봅니다.

시골집에 다니면서 마을을 한 번 돌아봤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더군요. 집집마다 대문에 문패가 걸려 있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에게 물었지요. 그랬더니 그게 다 면에서 해준 거라고 했습니다. 강소자, 최시이, 김동원, 김말국. 나는 문패에 적힌 이름을 보고서야 돌아가신 외숙모 이름이 ‘강소자’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나라 여자들, 이름 없이 살았습니다. 무슨 댁, 누구 엄마, 아무개 처였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일은 남자들하고 똑같이 하면서 집안일에 자녀 양육까지 도맡아 했습니다. 지독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들을 낳지 못하면 쫓겨나야 했고, 족보에도 이름이 오르지 못했습니다. 짐승보다는 조금 나은 ‘말귀 알아듣는 노예’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렇게 살던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납니다. 이 시를 읽는 이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도 첫 행의 ‘장례식장 와서야 알았다’라는 표현입니다. 죽기 전까지 몰랐던 것, 죽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된 것, 그게 대체 무엇일까? 무슨 큰 비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망자의 이름입니다. ‘유순이’라는 그야말로 순한 이름.

그 유순이라는 여자의 생전 삶의 궤적 가운데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시의 화자가 첫 월급을 타 속셔츠 한 장 선물했을 때, ‘나까지 챙겼나’ 하면서 ‘눈물 비치던’ 대목과 ‘화장해 뿌리라’는 유언입니다. 평생을 노예나 다름없이 산 사람에게 인간으로서의 자존감 같은 게 남아 있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화장해 뿌리라’, 이 말 속에는 죽어서나마 이승에서의 속박을 벗어나 훨훨 자유로워지고 싶은 망자의 혼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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