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직 을지대 교목

 
주형직 을지대 교목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스위스의 작은 마을인 다보스에서 개최됐다. 민간회의지만 세계 여러 지도자들이 참석하기 때문에 ‘세계경제올림픽’으로 불릴 만큼 권위와 영향력을 자랑한다. 이번 포럼에도 64개국 정상과 3000여 명의 주요 인사들이 참여해 ‘세계화 4.0’을 주제로 400여 개의 관련 이슈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재작년 세계경제포럼은 앞으로 10년간 세계를 위협할 3대 위험요소로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양극화, 환경위험 증대를 꼽았다. 또 한국경제의 최대 위협요인으로는 실업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현 정부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다짐은 세계경제포럼이 지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조 위에 출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 WEF의 지적은 한 치 어긋남 없이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은 해결되지 않고 사회적 양극화는 극심해졌으며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위험은 심각한 현실이 됐다. 최악의 실업문제 역시 이렇다 할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사실 이 같은 문제는 개별 정부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 때문에 WEF 역시 국제협력을 통한 포용적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덮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특히 실업문제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청년세대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거침없는 분노를 표출한다. 실제로 개인의 노력만으로 처지를 개선하고 신분을 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됐다. 그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인내를 강조하며 비전이나 꿈을 말하기 힘든 것이다.

그들의 절망이 개인의 잘못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서툰 위로나 격려보다 대안과 방법이다. 물론 획기적인 대안과 방법이 있을리 없다. 그래도 암담한 현실에 좌절하기보다 삶의 의미와 소망을 찾는 일을 멈추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몇 년 전 8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가 쓴 ‘고맙습니다’라는 책이 있다. 죽음을 앞둔 저자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놓은 에세이다. 평생을 의사로 살았지만 암이 재발돼 살 수 있는 날이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게 됐다. 저자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동안 느꼈던 감사의 마음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털어놨다.

그는 엄격한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고 젊을 때는 약물 중독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80여 년의 삶이 감사로 가득 찼다고 말한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남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나도 조금쯤은 돌려줬다”고 적었다. 그는 절망 가운데서도 계속 살아야 하는 의미를 감사에서 찾았다고 말한다.

감사의 고백은 그가 누군가를 사랑했고, 사랑받았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언제나 편안하고 순탄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랑을 받으며 베풀고 나누면서 살았다는 사실이 일생을 감사와 의미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고 한 달여 지났지만 벌써부터 내일이 걱정이라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사는 것이 무섭고 두렵다고 말한다. 현실의 무거움 때문에 좌절하면서 절망 속에 몸을 숨기고, 그것이 당연한 것인 양 괴로워하기도 한다. 소망을 버리고 아예 극단적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다. 절망을 바깥으로 표출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크게 한탕해서 뒤엎겠다는 야심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확실히 오늘의 상황은 누구나 위기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상황이다. 그러나 위기 상황일수록 삶의 의미를 끌어안고 사는 것과 그것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차이는 적지 않다. 모두들 절망하고 불평하는 것 같아도 삶을 감사와 의미로 채우는 이들이 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틀림없이 사랑받고 있음도 알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이 다시 보이게 된다. 온통 신음과 탄식으로 가득했던 소음이 잦아들고, 세상이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무력감과 공포가 물러가고 불안과 두려움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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