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시선으로 쓴 시집과 영화에세이 , 강병철 ‘사랑해요 바보몽땅’, 박명순 ‘영화는 여행이다’

 
 
 

 

강병철 시인(오른쪽)과 박명순 문학평론가

충남의 대표적인 부부 문인인 강병철(62) 시인과 박명순(58) 문학평론가. 그들이 기해년(己亥年) 벽두 각각 시집 ‘사랑해요 바보몽땅’, 영화에세이 ‘영화는 여행이다’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깊은 밤, 홀로 독백에 빠지며 변신의 생애를 준비하는 강병철의 ‘사랑해요 바보몽땅’은 ‘기억의 힘’으로 쓰인 시집이라 할 수 있다. 기억이라는 밝지 않은 창고에는 명료한 사건 그 자체가 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명료하지 않은 해석이 더미를 이루고 있다.

시는 다시 한 번 그 불명료한 해석의 더미를 꺼내 재해석한 결과물로, 이번 시집은 그것에 매우 충실하다.

최근 36년의 교직생활을 마감(서산 대산고에서 정년퇴임)한 강병철은 기억 속의 여러 인물을 호출해 여러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런 다양한 기억은 시인의 내면이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 드러낸다. 그것은 지금은 사라진 민중의 이미지들이다. 이 이미지들이 비록 ‘옛 이야기’처럼 들릴지라도 분명히 우리의 역사를 지탱해준 ‘거대한 뿌리’임은 사실이다. 시인의 기억 속에 있는 민중은 처처에 존재하며 묵묵히 세상을 지탱시키는 아랫돌 역할에 충실하다.

능청스러움으로 유머를 잃지 않고, 해야 할 말을 포기하지도 않는 시인은 어떤 사물과 사건 앞에서도 무거워지지 않는 미덕을 보인다. 인식의 출발은 무겁지만 마지막에는 낙천이 드러나는데, 이런 낙천의 본질은 대상에 대한 사랑이다. 기억 속의 인물들이든 가족이든 시인의 시선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호기심이 많고 변화하는 삶을 추구하는 박명순의 ‘영화는 여행이다’에 실린 43편의 영화(‘수상한 그녀’, ‘완득이’, ‘가위손’, ‘신세계’ 등)에 대한 에세이를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삶’이 될 것이다. 천안여중 교사로 재직 중인 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영화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보다 주체할 수 없는 사랑으로 글을 썼기 때문인지, 우리는 어느새 저자가 소개하는 영화의 내면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영화의 내면은 알고 보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영화와 우리를 점도 높게 연결한 것은 당연히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다. 스스럼없는 고백과 치장하지 않은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누군가의 다정한 손길에 이끌려 스크린 앞에 앉아 있는 느낌에 휩싸인다.

영화 읽기를 여가를 선용하기 위함만이 아니고 ‘공부’나 ‘생각할 거리’로 삼는 것 또한 저자의 영화를 대하는 자세다. 저자는 영화를 통해 뜻밖에 공부의 의미를 발견한다. 가족의 의미와 지난 시간의 일들을 반추하는 것도 공부이지만, 영화를 통해 여성의 현실을 새로이 깨닫게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영화는 현실이면서 읽어야 할 텍스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읽는 일은 이론과 개념을 접어두고, 읽는 이가 처한 여건과 현실을 새롭게 해석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영화를 읽는 일은 영상문화가 압도적인 시대에 갖춰야 할 지적인 태도임을 저자를 통해 알 수 있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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