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TV 뉴스를 시청하다보니 “성적지상주의의 종말을 고하겠다”는 표현이 나온다.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발생한 남자 지도자의 여자 선수에 대한 상습 성폭행 사건이 사회적 이슈화 된 뒤 관련부처 장관이 한 말이다. 그러면서 전국소년체육대회 폐지를 비롯해 체육계를 전면적으로 뒤엎을 만한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다양한 조치가 발표된 가운데 한 마디로 축약하면 지금껏 국가체육 운영의 근간을 이뤄온 ‘성적지상주의’를 벗어던지겠다는 것이다.

냉전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데탕트(detente)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한 이후 구미 선진국의 국민 의식구조는 빠르게 변화해갔다. 승리를 통해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일에 모든 가치를 부여했던 냉전시대의 낡은 가치를 과감히 벗어던졌다. 인간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승부보다 본질적인 가치에 기준을 두기 시작했다. 스포츠를 비롯해 모든 사회 분야가 그렇게 흘러갔다. 승부가 아닌 즐기는 마음을 앞세우니 자연스럽게 조바심이 사라지고 너그러워졌다.

그러나 우리는 달랐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탓인지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냉전시대의 가치에 머물러 있다. 무엇이든 이겨야 했고, 이기기 위해 인간성이 손상되고, 누군가 패배해 쓰러져도 부축해 세울 줄도 몰랐다. 오로지 이기기 위해 못할 일이 없었다. 사회 모든 분야는 경쟁이 아닌 것이 없이 살았다. 패자는 낙오자로 낙인 됐고, 오직 승리만이 가치 있는 일이고 승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살았다.

올림픽 메달을 위해 젊은 선수들을 합숙시켜가며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지도자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폭언이나 폭행은 성과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가르쳤고, 그것을 저항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게 했다. 한 마디로 인간을 인간으로 성장시키지 않고 메달제조기로 만든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전혀 맞지 않는 방식이었지만 관계자는 물론 모든 국민들도 그것이 옳다고 믿었다.

우리보다 인구가 곱절 이상 많고, 경제력도 월등히 앞서는 데다 시설 인프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앞서 있는 일본이 수십 년째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때 우리보다 뒤처지는 모습을 보고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들이 왜 그런 성적을 냈는지 본질적으로 생각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정신력이 그들보다 앞섰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만 생각했다. 성적지상주의라는 구시대적 산물이 안긴 선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 선수의 폭로에 의해 세상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이제야 생각을 가다듬고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려 하고 있다. 성적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어디 스포츠계뿐인가. 대한민국 어디를 둘러봐도 전 분야에서 성적지상주의는 만연해 있다. 교육계가 그러하고 문화계가 그러하고 산업계도 그러하다. 본질적 가치는 뒷전인 채 오로지 승부와 성적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은 21세기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

성적을 올리고 메달을 따내기 위해서라면 어떤 부조리도 감내해야 하고 비인간적 처우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상식이다. 훗날 찾아올 달콤한 보상을 위해 현재의 고통과 시련은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맹신하고 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적지상주의의 폐해이다.

한 선수의 용기 있는 결단을 계기로 정부가 앞장서 성적지상주의 탈피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우선은 스포츠계가 개혁의 첫 대상이 됐다. 하지만 성적지상주의는 비단 스포츠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문화 전반에 아주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고질병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없고 오로지 저급한 승부근성으로만 가득한 냉혈인간을 만드는 데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인간성을 회복하고 모두가 더불어 즐기며 살아가는 풍요로운 세상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