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대전시민대학 이미지인문학 강사

지난 명절 연휴를 이용해서 여행 삼아 일 삼아 남원 사매면과 무주 무풍면을 찾았다. 시골 마을 두 개의 공간이 주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오랜 시간 마을의 공간을 지켜왔던 사물들은 새로 지어진 건물들의 공간 배치와 구조와 칠해진 콘크리트 색과 울타리와 함께 또 다른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다. 새로운 구조물들은 공간의 오랜 것들과 몹시 불편한 불협화음을 이루기도 하고, 색다른 활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영혼 없이 지어진 건물만큼 흉물스러운 것은 없다. 오래된 아름다움에는 새로운 것이 넘어설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깊은 세월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사매면 면사무소, 높은 언덕에 세워져있는 아름다운 전각을 철폐문으로 가로 닫아 버린 사람들, 전각 뒤에는 운동기구 몇 개가 영혼 없이 방치되어 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전각 곁으로 나있는 오붓한 오솔길이 너무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은 공간 속에서 가족과 다양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간다. 공간은 사람들의 흔적과 기억을 기지고 있기 때문에 그 공간을 찾아가는 여행자들은 그 공간의 오랜 지층 속에서 잃어버린 과거와 만나고 싶고,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낯선 도시를 찾아가는 여행도 그렇지만 자신이 성장한 고향을 뒤돌아본다는 것도 의미깊다.

오르한 파묵은 소설 ‘이스탄불’을 통해서 자신이 보고 자란 공간 이스탄불에 대한 기억과 추억, 고민과 방황을 이야기한다. 그는 비애, 폐허, 몰락 그리고 아무도 찾지 않는 변방의 이미지를 가진 ‘페허와 비애의 이스탄불’, 한때 모든 것을 소유했으나 그 영광을 잃어버린 도시를 사랑했다. 어린 시절, 그림처럼 아름다웠던 마을은 이제 사라져버린 폐허지만 여전히 그의 영혼 깊숙이 남아있다. 그것은 도시의 영혼이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도시의 폐허와 뒷골목을 좋아한다. 지저분한 골목길, 가난한 골목길을 찍는 그들은 한때 도시의 중심이었으나 과거의 위용뿐인 때 묻은 도시의 폐허 속에서 생을 읽는다. 허물어진 벽과 지저분한 낙서가 있는 남루한 골목. 일종의 멜랑꼴리다. 덧없고 유한한 인생의 은유처럼 지린내 나는 골목길을 돌아서 희미해져버린 담벼락 그림을 바라보며 비애를 느낀다. 그리하여 폐허가 된 골목의 음울함과 비애에서 사진가들의 예민한 감수성은 삶의 뜨거움을 끌어낸다.

어쩌면 여행이란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영혼을 만나는 일이다. 그것을 발견하는 자만이 도시의 아름다운 정수를 맛본다. 게으른 여행자들은 천천히 도시를 돌아본다. 낙서 하나, 모퉁이의 돌 하나, 오랜 세월 서있는 고목나무를 올려다보거나 메꾸어져 버린 우물가의 지저분한 것들을 바라보며 황망한 우리의 생, 덧없는 인생의 유한함을 반추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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