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큼은 기억해주세요] 안중근 의사는 왜 밸런타인데이에 밀렸는가?
[올해만큼은 기억해주세요] 안중근 의사는 왜 밸런타인데이에 밀렸는가?
  • 김현호 기자
  • 승인 2019.02.10 16: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결혼 장려한 밸런타인 주교 기리기 위해 시작
영국서 초콜릿 주고받기 시작해 일본으로 정착
일본 문화 유입에 밸런타인데이 국내 도입된듯

‘한국을 빛낸 위대한 100인의 위인들’이란 노래에 안중근 의사가 나온다. 교과서에서도 안중근 의사의 업적에 대해 서술한다. 어렸을 적 우리 모두는 안중근 의사에 대해 배웠다. 그러나 2월 14일이 사형 선고일이란 사실을 잘 모른다.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란 게 더욱 익숙하다. 천지 달력들도 그날을 밸런타인데이라고 말한다.

밸런타인데이는 3세기경의 인물인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 밸런타인 주교를 기리기 위해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가장 신빙성 있다. 당시 밸런타인 주교는 남자를 더 많이 입대시키기 위해 결혼을 금지하던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혼인성사를 집전했다. 그런 그가 순교한 날인 2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한 축일이라는 것이다. 다만 과거엔 목숨 걸고 결혼은 장려하던 그를 기리고자 가족끼리 조촐하게 지내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처럼 초콜릿을 주고받는 관습은 꽤 긴 시간이 흐른 뒤인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됐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캐드버리’란 초콜릿사가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광고를 기획했고 최초로 밸런타인데이 기념 초콜릿을 만들어 팔았다. 당시 마케팅은 대성공적이었고 캐드버리사는 전 세계적인 초콜릿사로 성장하게 됐다.

동양에선 1936년 일본 고베의 한 제과업체가 캐드버리를 따라 밸런타인데이를 마케팅하며 ‘밸런타인데이=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란 이미지를 만들었고 캐드버리사처럼 성공을 거뒀다. 또 1960년 일본의 다른 제과업체가 여성을 대상으로 초콜릿을 통해 마음을 고백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지금의 밸런타인데이가 본격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한 순간이다.

먹고 살기 좋아진 시기인 1980년대 후반 들어 일본의 문화가 음지를 통해 국내로 하나 둘 유입됐는데 밸런타인데이 역시 이와 비슷하게 국내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한국은 일본과의 문호가 개방되기 전부터 당시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일본의 다양한 문화를 따라하는 풍습이 있었다. 반체제 자연찬미파 문화인 미국의 ‘히피’가 일본에선 폭주족으로 변질되고 여과 없이 한국으로 유입된 게 대표적이다.

밸런타인데이가 자본을 앞세운 제과업체가 주도적으로 마케팅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영국의 마케팅을 참고한 일본처럼 자본력을 앞세운 국내 제과업체 역시 일본의 마케팅을 참고했을 수 있다. 실제 한국에 제법 역사가 깊은 과자들은 대부분 일본의 것을 베꼈다. 밸런타인데이는 여성을 대상으로 삼았는데 문화 관련 니즈(needs) 구매력에 있어서 여성이 남성보다 높다는 점 역시 국내 시장에 밸런타인데이가 성공적으로 장착된 원인으로 보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본주의 앞세워 들어온 문화가 빠르게 정착했던 것처럼 거대 자본을 통한 밸런타인데이 마케팅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을 잊게 한 것은 아닐까?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실시간 핫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