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정규직의 서러움 없는 나라 만들어야
[사설] 비정규직의 서러움 없는 나라 만들어야
  • 금강일보
  • 승인 2019.02.10 16: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12월 11일 새벽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석탄운송설비 점검 중 사망한 고 김용균 씨가 두 달 간의 냉동실 보관에서 벗어나 9일 발인해 이 세상과의 작별인사를 나눴다.

김 씨의 죽음에 대해 노동계는 사회구조에 의한 타살이라고 규정하고 이 나라에 비정규직이 철폐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언제나 노동계의 핫이슈지만 이번에 김 씨의 죽음으로 재점화 됐다.

비정규직이란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7년 국가 외환위기를 겪고 이듬해인 1998년에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가 합법화 된 이후 각 직장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부터이다.

당시에는 환란에 빠진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바라봤지만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OECD 가입국 평균의 2배에 이른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강도의 노동을 하는데 누구는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많은 급여를 받고,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받지만 누구는 비정규직이어서 낮은 임금에 열악한 환경 속에 일하고 늘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아웃소싱이라 불리는 하청 구조가 일반화 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더욱 구조화 되고 있고 심화되고 있다. 내 자식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면 어떨까를 생각하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의 규모는 갈수록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하청과 하도급 등이 일반화 되면서 비정규직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그 비율이 점차 늘어만 가고 있다.

비정규직이 늘어간다는 것은 앞으로 내 자식, 내 손자, 내 조카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의 일로만 여기다가 어느 날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것은 어쩌면 피하기 어려운 대세이다.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근로환경, 급여 수준, 고영 안정 등의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같은 직장 내에서 같은 일을 하고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모든 부당함을 감내해야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차별대우를 받고도 좋아할 이는 없다.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는 노노 간의 갈등 유발요인이 된다.

고 김용균 씨의 희생을 결코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내 자식, 내 조카가 화를 당했다는 생각을 갖고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김용균 씨 사망사건을 계기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철폐를 위한 개혁 운동에 전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 이상 이 땅의 젊은이가 차별 속에 살다가 초라한 모습으로 떠날 수 없게 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