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지금은 모든 학교들이 졸업식을 할 때다. 그리고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자기가 바라는 학교나 학과에 진학하게 되거나 합격하거나 또는 실망하여 다른 길을 찾는 때이기도 하다. 바로 이때를 위하여 하루 24시간이 너무 짧게, 그러면서 몹시 피곤한 삶을 살아온 황금 같은 시절을 보냈다. 아무리 해도 해도 부족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공부 때문에 맘 깊은 곳, 가슴 깊은 곳에 무거운 추를 달고 물속으로 빠지는 듯한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젊은 시절이다. 물론 처음 아이가 탄생했을 때의 감동과 기쁨은 그가 자라면서 어떻게 기르고 교육해야 할까에 생각과 현실이 미치면 아무런 특정한 대답 없이 밀물과 썰물에 밀리듯이 떠내려가는 듯이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문제다. 수백 가지의 대답과 도움말들이 있지만, 한결같이 딱 이것이다 하는 것이 없이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무엇인가 하나를 선택하게 만든다. 무수히 많은 답이 결국은 답 없음이다. 그래서 안타까우면서, 그렇게 파릇한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맘은 참으로 무겁고 답답하고 때로는 매우 슬프다.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나를 자주 만나고 싶어 한다고 그 엄마들이 말하는 소녀들이 있다. 하나는 이번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자기가 가고자 하는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다른 하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녀가 가고자 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하였다. 그 둘은 나와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였지만, 하나는 영재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전혀 시간을 내지 못하였고, 다른 하나는 가끔 시간을 냈지만, 언제나 다른 일에 밀려서, 즉 새로 등록한 학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편안하게 함께 말하며 지낼 수가 없었다. 내가 보거나 듣고 판단하기에 그들은 절대로 학원에 가야 할 만큼 학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이 열심히 학원에 가니 가지 않으면 불안한 듯이 보여 가야 한다는 맘이 커서 어쩔 수 없이 학원을 경험하게 하였단다.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학원을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꼭 가야 한단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이미 다른 아이들은 선행학습을 하고 오기에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 보조를 맞추어 나가려면 역시 미리 상급학교의 일정한 과정을 공부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이미 갈 학교가 결정되었지만, 시간을 내어 보고 싶다는 할아버지를 만나러 올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먹먹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은 가야 할 대학이 결정되고 나면 상당한 부분 그 대학에서 공부할 것을 미리 공부해야 한단다. 이른바 선행학습이라는 것이란다. 허어, 이 일을 어찌해야 할까?

하기는 요사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읽고 쓰고 셈하는 것을 거의 다 배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그렇게 미리 배우지 않는 아이들이 없단다. 어떤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인터넷에 나오는 무수히 많은 영상물을 통하여 미리 다 알아버린단다. 천재들의 시대인가? 그렇다면 나는 이 때 참 많은 의문이 든다. 이렇게 된 아이들을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들은 무엇부터 가르치시게 될까? 학교의 기능이나 교사들이 할 일이 상당히 달라졌겠지만, 학교에서 해야 할 일들을 이미 다른 기관에서 해버렸다면 어쩌란 말인가? 유치원에서 놀아야 할 아이들에게 읽기 쓰기를 가르쳐버렸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놀고 싶어서 안달이다. 이것들을 어떻게 조화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두어 가지 엉뚱한 듯한 제안을 하고 싶다.

1) 나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선생님들께 언제나 들은 것은 예습과 복습을 제대로 잘 해야 학습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옳은 줄 알았다. 숙제도 이 두 방향으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다 보니 이 두 가지를 효율이 높게 하기 위하여 사설학원이 별도로 생겼다. 그것을 통하여 학습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굉장히 많은 비용이 들어갔던가? 그것을 통하여 많은 학원기업이 생기고 일자리가 만들어졌지만, 교육이 올바로 가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것의 장단점 역시 한 두 마디로 따질 수 없게 복잡하다.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을 떠나서 나는 여기에서 실현 불가능하지만 한 번 시도해 보면 좋겠다는 것을 제안한다. 어느 학교에서나 예습숙제는 없애고, 복습숙제만 일정하게 내면 어떨까? 상당히 많은 경우 예습을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나 학원이나 다른 개인 교사의 도움으로 하게 되니 학교에서 배울 때 긴장과 감동이 없을 수밖에 없을 듯이 보인다. ‘선행학습’이라는 괴물까지 제도처럼 생활관행으로 등장한다.

2)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한 날 한 시에 한 문제로 치르는 수학능력시험을 없앴으면 좋겠다. 이미 공인된 고등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들을 왜 꼭 국가단위의 평가를 통하여 일괄평가를 하여야 하는 것일까? 믿지 못할 것이라 하겠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고등학교에 그대로 맡기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각 대학들에 학생 스스로 찾아가서 그 학교에서 내세우는 이념과 방법에 맞게 공부하게 하면 좋겠다.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지만, 그것은 학교와 학생 스스로가 할 일이라고 본다. 이렇게 하여 매우 다양한 삶의 길을 각자가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 나가도록 하면 좋겠다. 학생 수가 적어서 많은 대학들이 다 채울 수도 없고, 대학들의 독창성이나 독특성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을 때다. 수학능력시험이란 감옥으로부터 탈출시켜 자율성 있는 성장의 길로 젊은이들을 인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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