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을 초월한 그리움의 기억 , 사랑하는 존재, 시를 통해 소환

 
 

 

아들아 어깃장을 놓는 횟수가 증가하는 호르몬의 전쟁터
야속하게 너의 방문이 굳게 닫히면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잠시라도 인연의 끈 놓지 못하고
네 곁을 서성이는 것은
어쩌면 아비라는 아픈 이름 때문이었다

신은 절대로 주사위 놀음을 허락하지 않지만
너는 오늘도 거위의 꿈을 쫓는다

- DNA를 해석하다 中
 

 

 

생명과 사랑은 인생을 만들어가는 큰 존재다. 누군가 떠난 빈자리에는 그리움이 자리 잡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순간에는 기대와 기쁨이 존재한다. 느껴지는 감정은 다르지만 모든 순간은 소중한 기억을 통해 인생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채워나간다.

권득용 시인이 펴낸 ‘낙관落款한 점’(이든북)에는 살면서 마주하는 생명과 사랑, 그리움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그 중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 등 다양한 감정들은 시를 통해 자주 표현되는데 가족을 통해 여러 복합적인 감정도 느끼게 한다. 권 시인이 어느 날 아침 가족이 없는 빈집 적막함 속에서 느낀 슬픈 고독, 부모님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느낀 씁쓸한 감정 등이 그러하다.

특히 어머니라는 존재는 시집에서 부각된다. 가난 속에서 생계를 위해 힘들게 살았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시공을 초월해 과거의 어느 기억을 불러오고 그리움을 슬프게 그려낸다. 또 어머니라는 존재를 떠올려보면 마음 한켠이 슬퍼지는 것처럼 자신의 아내를 보고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이는 사랑하는 존재를 시로 소환해 현실의 갈등과 고통을 잠재우는 모습으로 비쳐진다.권 시인에게 아내가 그런 존재이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감정이 묻어있는 삶은 그렇게 반복된다. 시인은 또 아이들을 통해 미래를 상상하기도 한다.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새로운 미래를 다음 세대의 모습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이해가 되지 않고, 갈등을 빚는 순간과 고비도 있지만, 그런 상황도 시로 덤덤하게 풀어낸다.

‘낙관落款한 점’은 1부 불고지죄(不告知罪), 2부 푸른 바다는 고래의 눈물이다, 3부 사랑은 백년의 고독이다, 4부 DNA를 해석하다, 5부 눈은 이순(耳順)의 나이다, 6부 햇살과 바람의 현(絃) 등 모두 6부로 구성돼 44편의 시를 담고 있다.

지난 1999년 ‘오늘의 문학’을 통해 등단한 권 시인은 시집 ‘권득용의 러브레터’, ‘아버지, 인연의 아픈 그 이름이여’, 칼럼집 ‘자연은 때를 늦추는 법이 없다’, 산문집 ‘일어서라 벽을 넘어야 별이 된다’, ‘문학, 그 신명난 춤판’ 등 다수의 책을 펴냈고 인터넷 문학상, 진로문학상, 대전문학상, 대전동구문학상, 한밭시낭송 전국대회 금상, 대전시 문화상(문학부문) 등을 수상했다. 현재는 대전예총 수석부회장, 대전문화재단 이사, 대전문학진흥협의회 상임대표, 대전문인협회 운영자문위원장, 백제문화원 이사장, 문경문학관 이사장으로 지내고 있다.

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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