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육공동체연구원장, 한밭대 교수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천명했다. 명연설이었고 지금도 가슴 깊은 곳에서 감동이 흐른다. 확실히 새로운 나라가 되겠구나 하는 신뢰가 섰다. 한국은 지난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주관하는 정부신뢰도 평가에서 전년보다 7위가 오른 25위였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크게 상승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정부 신뢰만 낮을까? 필자는 사회 모든 부문의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신뢰는 정직에서 출발한다. 정직은 진실하고 열린 마음이며 사실대로 말하는 태도로서 믿음의 기초가 된다.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미국인 친구가 미국과 한국은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다. 그때 시민들의 ‘정직과 친절함’이 다르다고 말했고, 차별화된 사례를 설명했더니 아주 의아하다고 답변하여 매우 당황했던 기억이 생각난다. 지금은 우리 시민의 정직수준이 매우 높아졌지만 그 때만 해도 거리에서 물건을 분실하면 찾을 확률이 거의 없을 때였다. 공직자의 신뢰수준도 매우 낮아 담뱃값, 급행료는 물론 사회 구석구석에서 불신과 불공정이 판을 치던 시절이었다.
과거 신뢰지수가 낮은 것은 먹고살기 어려운 경제적 여건과 고도산업화 시기의 과도한 경쟁사회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도 직무교육, 입시교육에 치중하고 인성교육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우리사회의 불신문화를 비롯하여 고질적 병폐인 불평등, 불공정, 과도한 경제적 양극화, 지연과 학연에 의한 불법과 편법 등 총체적 사회 불신이 정유라의 불공정 대입비리 사건을 계기로 촛불혁명으로 나타났고 정권을 교체시켰다고 생각한다.

이제 정권 중반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과거정권의 적폐청산, 검경개혁, 사법개혁을 외쳤지만 국민의 실생활에서 느끼는 신뢰 개선의 체감도는 높지 않다. TV뉴스를 보면 각종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유명 인사들이 뻔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음에 분노하게 된다. 이는 총체적 신뢰사회 운동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정치적 이해활동에 멈추었기 때문으로 사료된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가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불신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갈등에 따른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국가 번영을 이루기 위한 중요 요소의 하나로 ‘신뢰’를 지목하며, '지속 성장을 달성한 국가는 신뢰 자본이 풍부한 국가'라고 지적하고, 신뢰 수준이 높은 사회일수록 각종 계약·거래와 관련한 불신(不信) 비용이 적어 효율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한국정직운동본부 박경배 대표는 “짧은 기간에 고도의 경제성장은 이루었지만 너무도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버렸다”고 진단하며, “예와 도가 땅에 떨어졌고 나만 있지 이웃이 없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물질우선주의가 큰 소리 치는 세상이 됐다”며 “거짓이 자연스러움이 됐고, 수치심과 죄의식도 사라졌으며 정직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바보스러운 행동으로 비춰 진다”고 진단했다. 또 국민실천 사항으로 ‘양심에 따른 정직한 생활, 정직한 자녀교육, 직장과 학교에서의 정직실천, 약속과 교통질서 지키기, 자신의 잘못에 솔직하고 남에게 예쁜말 사용하기, 공익을 해치는 비리나 부정에 대해 용기 있게 말하기’ 등을 전개하여 ‘정의와 진실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피력했다.

교육분야의 불신도 매우 크다. 교실에서 학생들은 개인마다 타고난 소질과 능력이 다르기에 각 분야에서 모두 1등이 될 수 있다. 유럽의 입시는 학생의 다양성을 반영한 학생생활종합기록(학종) 전형을 활용한다. 우리나라도 학종 선발제를 시도해 왔지만 고교의 학종 불신이나 대학에서의 선발 불신 때문에 획일화된 경쟁적 수능전형으로 다시 회귀하려하고 있다. 모두 불신 탓이다.

이제 총체적으로 신뢰와 정직한 사회를 위한 학교교육과 국민적 사회운동 그리고 제도보완이 필요하다. 김영란법으로 정직과 청렴사회에 대한 제도적 기초는 세웠으나 국회의원이나 정부 권력자들은 피해가고 있어 예외 없는 엄중한 처벌과 공익신고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특히 정치인의 권력을 이용한 사익추구는 엄벌하고, 경제인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회적 실천, 가정과 학교에서의 정직과 인성교육을 강화하며, 사회 전반에서 국민적 실천문화로 자리매김하도록 지원하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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