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대전역 동역을 빠져나가 왼쪽으로 10분만 걸어가면 납작만두같은 마을이 나온다. 경쟁하듯 솟아오른 대전에서 땅이 훅 꺼진듯한 느낌은 갈 때마다 새롭다. 소제동 철도관사촌이다. 얼추 100년의 시간을 바라보는 마을이었다. 이 곳이 개발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무관심 덕분이었다.

대전역 동편으로 KTX역이 열리면서 죽은 듯 엎어져있던 소제동이 시끌시끌하다. 오롯이 이 손바닥만한 땅이 재산의 전부인 사람들에게 이런 개발 기회를 놓으라 말하는 것은 사실 못된 말이었다. 이 사정 저 상황 다 알고났더니 글을 쓰기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억울해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관사촌은 철도가 만들어지던 1905년 즈음부터 시작된다. 철도를 만들고 대전역을 운영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고 자신의 일을 따라 정착한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살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어느날 어느 누군가 한 사람씩 들어와 살다가 드디어 관사촌이 형성됐다. 나무로 만들어 두 가정이 한 건물에 붙어있고 창고 건물이 각각 하나씩 딸려있었다. 지금 눈으로 보면 집단 수용소(?) 같을 수 있으나 그 널찍한 공간이 겨우 두 집 소유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상당한 부촌이었다. 반듯한 아우라는 지금도 남아서 40여 채 관사촌은 꽤 멋스럽다. 사연이 많았을텐데 여전히 열을 지어 건강하게 살아있다.

지난 2015년 내셔널트러스트운동본부는 지켜가야 할 우리유산으로 관사촌을 지정했고 여기에 전국적인 관심이 쏠렸다. 영화에서나 본 듯한 좁은 골목길, 거친 시멘트 비랑빡, 사이사이 낀 검은 이끼, 마름모꼴로 쌓아올린 축대, 어릴적 보던 간유리, 소나무 전봇대, 얼기설기 전선, 심지어 아직도 장사를 하는 점방들이 남은 거리는 신기하기까지 하다. 관사촌에 사람들의 관심이 밀려들자 창작촌이 들어섰다. 여기저기 조금씩 감각을 보태 예술이 곁들여지게 된 것이다. 이제 낯선이가 낯설지 않은지 동네 개들도 사람을 구경하고 반긴다.

그러나 이러한 소소한 산책도 얼마남지 않았다. 개발조합이 소제동에 만들어지면서 이미 일부는 재건축이 결정됐다. 어쩌면 올 겨울을 마지막으로 관사촌을 떠나보내야 할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의 공간이 나에겐 그리움이 돼 미안한 마음으로 걸었다. 단 하나의 희망, 개발이 물 건너갈까봐 요즘 관사촌 주민들 표정이 살벌하다. 과한 촬영에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도 여러 번 봤다. 여러 모로 생각을 조율해 간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남기고 싶은 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위로하고, 어떻게 안아갈 것인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켜갈 것인가? 너무나 어려운 문제 한복판에 서 있는 2019년 우리들이었다. 새 것은 너무 많다. 새 것이 이젠 새롭지 않다. 우린 어쩌면 익숙한 어느 것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가는지 이젠 정겨운 게 새롭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꿈꾸며 소제동을 생각해본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