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원 세종경찰청 개청준비단 경감

예전엔 설 명절이라 하면 민족 최대의 명절이란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그만큼 설 명절이 우리 생활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이야 휴일이고 가족여행 가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깊지만, 내 어린 시절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그땐 명절 며칠 전부터 가족 모두가 행실을 조심하고 차례 모실 준비를 했다. 그러다 보니 없는 살림에 차례 준비하는 부모님은 그야말로 비상이었다.

거기다 양반이라고 구색을 갖추다 보면 다음 달 살림을 걱정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은 빠짐없이 갖춰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지만, 그 뒤치다꺼리는 늘 어머니 몫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어린 자식들은 푼돈조차 함부로 쓰지 않았던 어머니를 자린고비라며 원망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내 어렸을 적 부모님은 힘든 게 한둘이 아녔을 게다. 온종일 뼈 빠지게 지게 지고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 내 자식들에게 넉넉히 못 해준 그런 아쉬움과 눈물이 늘 함께했을 것이다. 그런 사이 하나둘 자식들이 장성해 직장을 찾아 떠나고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 자식들은 그 자식을 낳고 세월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갔다. 그러다 보니 부모는 늘 몸 성한 자식, 손주들 보고 싶은 마음에 가족이 모이는 명절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올 설 연휴에도 여느 해처럼 같은 자리를 다녀왔다. 설날 하루 전 점심시간이 지나 시골집에 도착했다. 시골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어머니가 자식처럼 키우는 진돗개 '가을이'였다. 가을이란 이름은 막내딸이 지어준 이름이다. 어머니는 전화할 때마다 가을이 사료를 먼저 챙긴다. 홀로 계시는 어머니 곁을 지키는 가장 믿음직한 자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큰 형수님이 차례 음식 만드는 것을 거의 마무리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손만 얻고 마무리를 했다. 치울 것 대충 치우자 큰 형수님이 노래방 기계를 틀었다. 사실 어머니 집에는 낡은 노래방 기계가 있다. 어머니가 혼자 있기도 하지만, 노래 부르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당신이 직접 중고 기계를 들여놓았다. 노래방 기계를 틀자마자 서로 마이크를 잡는다. 수덕사의 여승. 서산 갯마을, 여자라서…. 주옥같은 노래가 이어진다.

노래하며 큰 며느리는 어머니를 안아주고 어머니는 큰 며느리 손을 꼭 잡아주었다. 팔순을 앞둔 시어머니와 환갑을 앞둔 며느리가 흥에 취해 노래로 하나가 되었다. 무심히 흘러간 세월의 야속함이 노래 속에 묻어 있는 듯했다. 시대가 변해도 세월이 흘러도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이 마음이 가족의 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설 명절이라고 해도 차례 모시면 바로 뿔뿔이 흩어지니 예전처럼 명절 분위기도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설빔 곱게 차려입고 동네 어르신들께 세배드리던 모습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설 연휴가 지나고 어머니께 가장 위안이 되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잘난 자식? 값비싼 선물? 아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했던 바로 그 시간 자체였다. 그만큼 어머니는 사람이 그립고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로웠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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