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균 대전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사업단 단장

중국 한나라에 곽거라는 효자 부부가 살았다. 부부는 가난했지만 어머니 봉양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얼마 후 집안에 아이가 태어났다. 부부는 없는 살림에도 어머니의 끼니는 거르지 않고 상을 올렸다. 하지만 식성이 좋아진 아이가 자꾸 먹어치우는 거였다. 부부는 고민이 커갔다. 어머니에게 올린 밥상을 아이가 먹는데 따른 고민이었다. 하루는 곽거가 아내에게 말했다. “애는 또 낳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한 분뿐 아니오!” 어머니 봉양 위해 애를 땅에 묻기로 한 것이다. 효를 위해 아이를 희생시키려는 의도다. 여기까지 보면 엽기효행이다.

아이를 땅에 묻기로 결심한 부부는 아이를 업고 산으로 갔다. 아이 묻을 땅을 파는데 이상한 물건이 나왔다. 황금솥이었다. 효자 곽거에게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 예부터 솥은 먹거리의 상징이다. 옛 그림에 솥이 많은 집은 부잣집이다. 반대로 솥이 달랑 하나만 있는 집은 가난한 집이다. 이렇듯 솥은 부의 상징이었다. 솥을 선물 받은 부부는 이후로 먹거리 걱정 안하며 어머니 모시고 아이와 함께 잘 살았다는 얘기다. 어머니 위해 아이를 희생시키려던 엽기효행의 반전이다.

고대 중국사회 24명의 효자이야기에 나온 내용이다. 중국 근대문학가 노신(魯迅)은 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고 평했다. 효로 포장된 불효라고 단정했다. 손자에게 먹거리 주는 것은 할머니의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인데 이것을 없애려고 한 것이 그 하나이고, 애를 낳아 대를 잇는 것이 가장 큰 효인데, 부부는 아들을 없애려고 했으니 이 역시 엄청난 불효라는 것이다. 곽거의 효행은 결국 효가 아닌 심각한 불효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유사설화가 우리나라 삼국유사에도 나온다. 역시 어머니 위해 애를 땅에 묻으려 했던 사건이다. 일명 신라 경주의 ‘손순매아(孫順埋兒)’ 설화다. 같은 이유이지만 중국에서는 황금솥이 그 보상으로 나왔다면, 신라에서는 석종(石鐘)이 나왔다. 석종은 곧바로 현금가치가 없다. 먹거리 해결책도 아니다. 그저 북과 더불어 소리로써 뭔가 사연을 전달하는 매체일 뿐이다. 손순 부부는 석종을 처마에 걸고 쳤다. 종소리가 울려 퍼져 임금이 계신 궁궐까지 울렸다. 임금님이 종소리를 듣고는 무슨 사연이 있는 듯하다며 알아보라고 했다. 결국 효자 부부가 있음을 알고는 그들을 포상했다는 내용이다.

두 이야기 모두 효를 강조하기 위한 극적 반전이다. 일상적 효는 단조롭다. 흥미도 떨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흥미를 돋우는 방법으로 반전만큼 좋은 게 없다. 앞서 언급한 노신의 비판은 설화의 의도를 너무 모르고 지적한 것이다.

유사한 전설이 대전에도 있다. 식장산에 내려오는 설화이다. 역시 가난한 부부가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먹거리가 부족한 집안에 아이가 태어났다. 남편이 노모 봉양을 위해 아이를 묻으려하자 아내가 자신이 끼니를 거르면 된다며 만류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부부는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묻으려고 땅을 팠다. 그런데 땅 속에서 그릇이 나왔다. 중국 전설의 황금솥이 그랬듯 그릇은 먹거리 해결의 상징이다. 효자부부에게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결국 효자부부는 먹거리 걱정을 안 하며 살았다. 어느 정도 살만하게 되자 부부는 식기를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갖다 묻었다. 욕심 부리다가 큰 화를 당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극한 효심에 착한 마음씨까지 더해진 이야기다. 이런 효자의 식기가 묻혀 있다 해서 그 산을 식장산(食藏山)이라 했다는 것이다.

삼국이 치열하게 다투던 삼국시대에 백제군사가 군량미를 저장했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전우치가 3년동안 먹을 양식을 묻어두었다 해서 붙었다는 얘기도 있다. 모두가 전설이니 무엇이 옳고 그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산이름이 갖는 다양한 이미지를 스토리텔링화 한다면 의미 있지 않을까. 같은 산행이라도 산에 얽힌 이야기를 되새기며 걷는다면 흥미롭지 않을까. 식장산을 오르며 부부의 효행설화를 생각한다면 좀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대전방문의 해를 맞이하며 대전을 찾는 사람들에게 식장산은 대전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경관뿐만 아니라 따뜻한 효행설화까지도 선물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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