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벅벅

차승호

평생 드나든 화장실 찾지 못하고
실수한 노인네 목욕탕으로 모시면서
서글픈 생각 들기도 하였지만
현상이 관념보다 힘센 탓이지
냄시가 생각을 밀어내는 상황인 거라

고장 난 뱃속이 문제인 세상에
소화 잘 시킨 거 보면
뱃속은 문제없는 것 같아 한편 안심하고
수돗물 콸콸 틀어 냄시부터 털어내는데
아까부터 묘하게 신경 쓰이는 자리, 노인네 거기

구석구석 비누칠하고
씻어내느라 모르는 체 했지만
알몸 희멀겋게 묵은 때까지 벗기는 동안
고개 돌릴수록 자꾸 눈이 가는 거라

나이 든 아들이라도 부끄러운지
달팽이처럼 움츠리는 노구(老軀)

술 취해도 표시 없는 얼굴 붉어지는 것 같아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버지, 거기 좀 씻어봐

따지고 보면 별스러울 것도
무안할 것도 없지만
선뜻 손 가기는 민망한 거라

아버지, 자꾸 조몰락거리지 말고
거기 좀 시원하게 씻어보라니께, 벅벅

▣ 평생 다니던 화장실을 못 찾고 그만 일을 내셨군요. 정신이 제자리에 있지 않아서인지, 몸이 말을 안 들어서인지 그 내막은 모르지만 아무튼 낭패스럽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목욕탕으로 이끌어 닦아드리는데, 아들 손이 닿을 때마다 연로하신 아버지 달팽이처럼 몸을 움찔거리십니다.

팔이며 등이며 겨드랑이까지 비누칠해 다 닦아드렸는데, 마지막까지 차마 어떻게 하기 곤란한 게 “노인네 거기”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든 아들이지만 거기엔 쉽게 손이 가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씻는다고 조물락거리기만 하는데, 그걸 지켜보는 아들은 갑갑해서 속이 터집니다. 그저 좀 시원하게 손가락에 힘을 줘 벅벅 씻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버지는 이미 몸이 불편해 씻어도 씻는 시늉이나 할뿐이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제 생각엔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이렇게 해봐” 한 다음, 때수건에 비누를 흠뻑 묻혀, 거기를 시원하게 씻어드렸을 것 같군요. 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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