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서원 건립을 의논한 통문 ‘돈원구적’(遯院舊蹟).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소장
돈암서원의 강당인 ‘응도당(凝道堂)’

유명 사찰이나 서원, 향교는 문화재탐방 프로그램으로 많이 찾는, 대표적인 우리 전통문화유산이다. 이곳을 많이 찾는 이유는 수려한 주변 경관이 주는 여유로움과 고즈넉한 정취, 전통을 온전히 담은 건축물에서 옛사람과 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문화재를 포함한 옛것들이 간직한 그들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오랜 역사를 간직한 것일수록 그러하다.

서원과 향교는 교육과 선현배향을 통해 인재양성과 유교적 사회질서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한편으로 지역사림의 학문적·정치적 토론장이 되었다. 특히 명망 있는 인물을 배향한 서원은, 이를 중심으로 학파와 문파, 정파가 형성되었다. 또, 그렇게 형성된 학파의 명성과 역향력은 서원의 영향력으로 환원되었다. 따라서 서원은 교육과 제향의 순수한 기능을 넘어 구성원의 연대를 통한 권력 형성과 확장의 핵심 거점이었다.

충남에도 많은 서원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 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서원으로, 논산의 돈암서원(遯巖書院, 사적 제383호)과 노강서원(魯岡書院, 보물 제1746호)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충남의 대표적인 명문거족, 광산김씨와 파평윤씨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돈암서원은 1643년 건립되어, 조선 예학의 태두인 사계 김장생을 주향으로 하고, 그 아들 김집과 제자 송시열·송준길 등 17세기 기호학파의 중심 인물을 배향한 서원이다.

또, 노강서원은 1675년 팔송 윤황을 주향으로 모신 이후 윤문거, 윤선거, 윤증 등 충청지역 소론계의 대표적인 인물을 배향한 서원이다. 현대인에게도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거니와 당시로도 소위 ‘거물’들로, 조선후기 사회에서 이들이 각 분야에 미친 영향력은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다.

서원의 영향력은 서원에 출입한 인물을 기록한 좌목류를 통해서 그 영향력으로 확인할 수 있다. 주로 청금록, 선생안, 재임안, 유안 등의 이름으로 전하는 좌목이 그것이다. 예를들면, 돈암서원에 전하는 ‘돈원구적(遯院舊蹟)’은 돈암서원 건립을 위해 왕래한 통문(通文)으로 돈암서원의 당대 위세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서이다.

이 문서는 송준길, 윤전, 이유태, 송시열 등 사계 제자들의 친필 사인을 거친 것으로, 인물 자체로 광산김씨와 17세기 광산김씨의 위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장을연(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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