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황토

김용만

바람 부는 솔숲 아래
붉은 황토 깊이깊이
아버지 유골
가지런히 묻어 두고

자다 깨다
자다 깨다

서울역에
내려서니

끝내
구두 끝에 묻혀 온
붉은 살 한 점

▣ 화려한 조명, 반질거리는 바닥,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서울역에 내리고 보니 구두 끝에 붉은 황토가 묻어 있습니다. 낯설고 생급스럽습니다. 이 호화찬란한 문명의 세계에 촌스럽게 황토라니요. 백주대낮에 벌거벗은 것처럼 황망하고 당혹스럽습니다.

흙투성이 농사꾼으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생애가 그렇습니다. 손톱 발톱은 물때가 끼어 누렇고, 햇볕에 검게 그을린 주름투성이 얼굴은 봐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초라하기 그지없는 아버지가 유명을 달리해 땅에 묻힌 뒤에도 자식을 따라 서울까지 왔습니다. 붉은 황토 깊이깊이 / 아버지 유골을 / 가지런히 묻어두었는데도 말입니다. 구두 끝에 묻은 붉은 황토, 그것은 곧 아버지의 살점입니다.

황토야 발을 탁탁 털면 없어지겠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장례를 치른 후 기차 안에서 졸다 깨다 하면서 서울역에 도착해 보니 구두에 붉은 황토가 묻어 있다는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아들로 맺어진 인연이 쉽게 끝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부자지간을 목숨의 뿌리, ‘명근(命根)’이라고 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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