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동 산신도(충남유형문화제 제199호). 충청남도역사박물관 소장
부전대동계 문서(충남유형문화제 제226호). 충청남도역사박물관 소장

전통시대 공동체 운영을 위한 일반적인 모임 형태 중 하나가 ‘계(稧)’이다. 계는 주로 작은 공동체 단위로 형성되므로 ‘동계(洞契)’로 범칭되고, 내용에 따라 송계(松稧), 산제계(山祭稧), 혼구계(婚具稧), 상구계(喪具稧) 등 다양한 이름으로 운영된다. 이들은 모두 향약 정신에 기초하여 규약을 정하고, 회원들의 회비를 자본금 삼아 대출로 이자를 취함으로써 회를 유지하였다. 회원은 단위지역 구성원 대부분이 참여하는데, 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회원간의 신뢰와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충청남도 공주에는 그 유래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관련 기록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동계 연구에 매우 중요한 두 계가 있는데, 부전대동계(浮田大同稧)와 상세동 산향계(上細洞 山饗稧)가 그것이다. 

◆ 부전대동계(浮田大同稧) 
부전동은 공주의 무성산 남쪽 자락에서 금강에 이르는 20여 리의 긴 골짜기에 터전을 마련한 12개 마을을 아우르던 명칭으로 ‘뜬밭’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행정구역상으로는 공주시 우성면의 한천리·내산리·도천리·신웅리 등이 포함된다. 부전대동계는 충청지역에서 확인된 동계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이다. 부전대동계 문서는 부전동에 정착한 양반 사족들이 주도하여 창립·운영한 일종의 향약, 동약 자료로, 17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향촌사회의 운영과 실상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사족들의 동계 조직이 상하합계를 거쳐 19세기 이후에는 산신제 조직으로 변화한 특별한 사례로도 주목된다. 부전대동계 가운데 가장 오래된 1663년 동계좌목의 서문 '동계중수서'에 “임진왜란 이전에 동계를 실시하고 있었으나 난을 거치면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이 동계가 임진왜란 이전부터 이미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상세동 산향계(上細洞 山饗稧) 
유구읍 세동리 상세동마을에서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조직된 동계이다. 세동리는 마곡사 인근의 산골 마을로, 수백 년 전부터 산신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19세기 후반까지는 현 산제당 부근 바위 밑에서 제사를 지냈다. 산제당을 짓고 산신도를 봉안한 것은 1896년의 일로, 산신제와 산제당 운영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히 산향계를 조직하였다. 상세동 산향계 역시 운영 기록이 잘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산신도를 봉안하던 1896년 3월의 '산향계좌목'과 '축원문'에는 계의 결성 목적과 운영 규정, 계원 명단, 발원문 등이 담겨 있다. 이 좌목의 계원 명단과 발원문의 발원자 명단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신양선(申良善)은 상세동산신도의 화기(畵記)에 화주(化主)로도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산제당 건립과 산신도의 제작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로 추정된다. 상세동에서는 봄·가을로 산신제를 지내는데, 대개 음력으로 정월과 시월의 초하루에서 초사흘 사이에 날을 받는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충청유학, 미래를 청치다'(2016) 발췌] 
장을연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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