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비롯된 감정 섬세히 다뤄
서정성 품은 시 그려내

 
 

 

독에 매여 있는
염소의 콧등에 꽃잎이 내려앉는다
허공 어디쯤에서 날아왔는지
꽃잎이 거뭇거뭇 시들었다
붉은 꽃이 거뭇하게 변할 때까지
세상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영영 시들 것 같지 않은 꽃잎에
파르를 떠는 염소의 눈꺼풀
염소도 외눈으로
시든 꽃잎을 슬쩍 보았을 것이다

염소와 꽃잎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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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잊고 있었던 기억과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가족과 연인, 자신의 세계와 연결되는 순간에는 더없이 큰 시너지를 불러일으킨다. 서정성 짙고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감정이 단연 돋보이는 유진택 시인의 ‘염소와 꽃잎’(도서출판 푸른사상)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유 시인이 펴낸 시집은 자연의 측면에서 주변에 놓인 사물과 사람들을 바라본다. 동·식물, 환경을 비롯한 다양한 존재들은 그가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오롯이 담아내며 더 큰 존재감을 보이고 이는 곧 사랑의 가치 등을 묘사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꽃, 나비, 숲으로 난 길 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재들은 그의 기억 한 부분에 숨어있는 추억들과 결부되기도 하고 주변을 자연스럽게 녹여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즉 자아와 대상이 통합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서로 연결돼 균형으로 이루며 서정성을 띤다.

그는 때론 애틋한 마음으로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어머니의 얼굴’을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닫는 과정을 담아내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유 시인의 작품은 주체와 객체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다. 단순히 자신의 시를 그려내기 위한 소재로 경물을 바라보지 않기에 자연과 인간의 감정 그 중간지점에 서서 유 시인은 감정을 그려낸다.

‘염소와 꽃잎’은 1부 사랑과 흑심 사이, 2부 고향집은 슬프다, 3부 붉은 오지, 4부 노승과 휘파람새 등 모두 4부로 구성돼 66편의 시를 담고 있다.

충북 영동에서 태어난 유 시인은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30년 가까이 대전에서 살고 있다. 지난 1996년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서 시 ‘달의 투신’외 3편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해 ‘텅 빈 겨울 숲으로 갔다’, ‘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 ‘날다람쥐가 찾는 달빛’, ‘환한 꽃의 상처’, ‘달콤한 세월’, ‘붉은 밤’ 등을 발간했다. 2018년 대전문학관 시 확산 시민운동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와 좌도시 회원, 대전작가회의 이사를 거쳐 무천문학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대전세무서 운영지원과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파울로 코엘료의 장편소설의 한 구절처럼 나도 간절히 원해 시집을 내게 됐다”며 “서정성이 느껴지는 ‘염소와 꽃잎’을 시집의 제목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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