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매운 밤

홍현숙

자꾸 밥을 짓고
자꾸 밥을 먹고
자꾸 머리를 감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놓고
엘리베이터 내려 현관문을 여니
집안이 온통 흐리다

“여기서 몇 밤 자고 있으믄 엄마 오는 겨?”
“네 엄니, 열 밤만 자고 계셔. 그럼 모시러 올게.”
“여기서 밥도 줘?”
“그럼 엄니, 밥도 주고 사탕도 주지.”

다섯 살이었다가 스무 살 갓 시집 온 새댁으로
친정 갈 보따리를 챙기고 금세 일흔으로 돌아와
남의 일 댕기느라 늘 배고픈 아들 밥을 짓는 어머니
그만의 공터, 허공 속
어머니는 날마다 그곳을 넘나드셨다

아흔두 해 걸어온 기억의 샘에 물이 말라
며칠씩 광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다가
멀쩡히 돌아앉아 또 밥을 청하는 어머니
처서 지나 서늘해진 밤공기가
맵다
창문을 몇 겹으로 닫고 블라인드를 내렸지만
어느새 쫓아온 달빛이
어깨를 툭!
집는다

▣ 처서가 지난 어느 날 92세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두고 왔습니다. 시어머니는 ‘기억의 샘에 물이 마른’ 치매 환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에 계실 때 밥을 먹고도 안 먹었다고 하고, 머릴 감고도 안 감았다고 했습니다.

며느리를 보고 엄마라고 하는 시어머니. 그 시어머니는 오래도록 ‘남의 일 댕기느라 늘 배고픈 아들 밥을’ 지어주셨습니다. 마음이 아팠겠지요. 살림에 여유가 없어 배를 곯으며 일하러 다녀야 했던 아들이 마음에 걸렸을 겁니다. 그 아픔이 시어머니에겐 곧 ‘그만의 공터이자, 허공’입니다.

이제 여름도 가고 가을 문턱인 처서입니다. 아침저녁 공기도 하루가 다르게 서늘해지고, 그러면 더욱 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니 생각이 나겠지요. 그래도 이제 시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셔야 합니다. 격리된 공간에 계셔야 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거리를 처연한 ‘달빛’이 채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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