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자 이순복 대하소설

학원탁은 마난과 노수 두 장수와 그런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유연 일행이 학원탁이 베푸는 무술시합장에 나왔다. 노수가 유연 일행을 한바탕 훑어보고는 먼저 입을 열어 말하기를

“우리는 오랫동안 변방에 살았기에 함부로 궁도를 휘두를 뿐인데 오늘은 이곳에서 중원의 법도 있는 묘기를 구경하고자 합니다. 전 장군께서 간직하고 계신 신기를 보여 주시는데 인색하지 마십시오.”

“소장을 그리 칭찬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망국한을 품고 사는 소장이 부끄럽기 짝이 없으나 대왕의 큰 은혜를 입었으니 어찌 영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행여 보잘 것 없는 재주를 부리다가 중인환시(衆人環視)리에 웃음거리가 되지나 않을지 크게 근심이 됩니다.”

전만년이 겸손하게 그리 대답하자 원탁이 말하기를

“전 장군은 너무 겸손하지 마시오. 장군의 무예는 호장한 기상에서 이미 읽고 있습니다.”

“그러시면 대왕의 영을 좇아 잠시 칼과 말 그리고 활과 화살을 빌려주십시오.”

“그러지요. 마침 나에게 월지국에서 얻은 준총이 워낙 사나워 아무도 타지 못하여 마구간에서 놀고 있는데 그 말을 드리겠습니다.”

원탁은 수하에게 말을 끌어 오게 하였다. 한참이 지나자 히히힝! 우렁찬 말울음 소리와 함께 적토마를 방불케 하는 붉은 말이 발굽을 힘차게 놀리며 떼를 쓰다 말고 나타났다. 신장이 8척이고 길이가 1장인 붉은 말로 갈기는 갈색이며 찬찬히 보니 눈동자는 푸른색을 띠고 초롱초롱 빛났다.

그야말로 용의 몸에다가 불타는 눈 그리고 우악스럽게 큰 입을 가졌으며 어떠한 올무로도 붙잡을 수 없이 날래고 비호같은 말이었다. 관운장의 적토마에도 뒤지지 않고 항우의 오추마에도 절대로 떨어지지 아니할 천하 준총이었다. 군사는 간신히 말을 끌어와 만년에게 말고삐를 건네주고 도망치듯 물러갔다. 행여나 말발굽에 채일까 두려워서 달아난 모양이다.

만년은 말고삐를 받아 쥐자 먼저 원탁에게 감사의 절을 하고 말의 목덜미를 툭툭 쳤다. 그러자 날뛰던 말이 머리를 두어 번 끄덕이다가 순둥이가 된 듯 잠잠해 졌다. 장군 나고 용마 난다더니 그 말이 진실일까? 말은 이제야 주인을 만난 것 같이 보였다. 말을 그렇게 제압하고 난 만년은 다시 원탁에게 예를 갖추어 청하기를

“소장이 평소에 82근의 칼을 썼는데 성도에 두고 왔습니다. 유랑하여 떠도는 길에 그 대도로 말미암아 주공께 누를 끼칠까 두려워서 그리한 것입니다. 염치없는 일이오나 대왕의 휘하에 무거운 칼을 가진 이가 있다면 잠시 빌려 주시기 바랍니다.”

만년의 청에 마난이 곧 앞으로 나서며 한마디 거들기를

“나의 영내에 60근 나가는 칼이 한 점 있습니다. 나의 종조부 되시는 마초 장군이 쓰시던 칼인데 아무도 이 칼을 다루지 못하여 그냥 유물로 두었습니다. 그 칼을 가져오게 하면 어떠실는지?”

원탁이 크게 기뻐하며 날랜 군사를 마난의 영중으로 보내 마초 장군이 쓰시던 칼을 가져오게 하였다. 칼을 가져 올 동안 일동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칼은 날이 저물어도 가져오지 못했다. 원탁은 다음날 만년의 재주를 구경하자고 말하고 영채로 돌아갔다.

다음날 영평강가 교련장으로 어제 모였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붉은 태양은 남만의 밀림을 작렬하고 강지의 군사들은 구름같이 교련장으로 모여 들었다. 학원탁을 위시한 모든 영웅호걸이 교련장의 드높은 단상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하지만 마초가 쓰던 칼을 가지러 간 군사는 아직도 도착하지 못했다.

이때 유영이 주변을 둘러보니 장창 끝에 기를 달아 장막 어귀에 세워 놓았다. 유영이 이 장창을 손으로 만져보니 사용할만하기로 곧 단상을 향하여 말하기를

“소장이 막간을 이용하여 노대인의 말을 빌려서 창술을 보일까 하는데 대왕께서 허락하시겠습니까?”

유영의 제의에 유백근이 나무라듯 말하기를

“너는 가벼이 의견을 말하지 마라. 높은 안목을 욕이라도 보일까 두려우니 언행을 삼가며 행동하라.”

백근이 유영을 꾸짖자 곁에 있던 마난이 말하기를

“유대인은 너무 겸양하여 자기 사람을 폄하하지 마시오. 천하가 다 아는 대한국의 장수가 어찌 허튼 재주를 보이려고 하겠습니까. 재주를 보여서 강지의 장졸들이 안목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게 해주십시오.”

이에 유연이 백근에게 마난 장군의 뜻을 따르자고 말하여 유영이 묘기를 펼치게 되었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