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추념사 중인 문재인 대통령 = 연합뉴스 제공

  올해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원봉’의 이름을 언급하며 시작된 서훈 논란의 여파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약산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벌여온 독립운동가이자 광복이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배반자로 평가되고 있다. 해당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1942년 김원봉의 한국광복군 합류를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은 통합 광복군 창설의 뿌리로 평가했다.
 

  이와 같은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는 수많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6·25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추념사에서 북한의 6·25전쟁 공훈자인 김원봉을 언급한 것이 대단히 경솔한 행동이며,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걷잡을 수 없는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대표는 ‘김원봉이 북한정권에 숙청당했다는 것이 모든 것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사회통합을 말하려다 오히려 이념 갈등을 부추긴 것이 됐다’고 평가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를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김원봉을 언급한 일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이명박 정부가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한 일을 예시로 들었다. 전 교수는 이어서 독립운동 경력이 없고, 주체사상 정립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황장엽이 월남한 공적으로 상을 받았는데, 김원봉이 상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김원봉은 의열단 단장, 광복군 부사령관,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내며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광복 이후 친일 경찰에게 모욕 받는 등 수난을 겪었고, 남북분단 이후에는 김일성 세력에 밀려 숙청당했다. 전 교수 이외에도 김원원에 대한 평가를 광복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1938년 조선의용대 시절 김원봉 = 연합뉴스, 독립기념관 제공

  ‘독립운동에 기여했을지언정 6·25전쟁 공로자를 서훈할 수는 없다’
  ‘김원봉에 대한 평가는 좌우 이념대립을 넘어 별개로 평가되어야 한다’
김원봉을 둘러싼 논란의 불씨가 점차 커져가자 청와대는 급히 해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추념사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메시지는 애국 앞에 보수·진보가 없고, 정파와 이념을 뛰어넘어 통합으로 가자는 취지다. 그런 취지에 대한 역사적인 사례로 (김원봉을) 말씀하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한반도의 좌우이념대립은 1919년 3·1 운동을 시작으로 본격화됐다. 이는 3·1운동의 평가에 대한 남과 북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현재 대한민국은 3·1운동을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 성공적인 민족운동으로 평가하고 있다. 반대로 북한은 같은 날 평양에서 있던 만세운동만을 인정하며, 3·1운동을 실패한 운동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미세한 가치관 차이는 좌익과 우익 세력 간 갈등을 심화시켰고, 결국 한국전쟁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낳게 된다.

1919년 10월 11일 임시정부 사진 = 연합뉴스, 독립기념관 제공

대한민국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역사적인 비극들과 함께 시작됐다. 3·1 운동과 함께 지속된 국가와 국가 간의 이념갈등은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하, 건국절 논란, 지역감정 등 대한민국은 좌익과 우익간의 끝없는 이념대립의 늪 속에 빠져있는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의 추모사는 이와 같은 혼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견 피력이었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문재인 대통령의 추모사는 대한민국의 이념갈등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재차 확인시켰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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