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동 한 카페에서 바라본 대청호.

 

1구간 두메마을길의 여름

한해의 절반이 지나고 청포도가 익어간다는 7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小暑)’에 대전지역에는 때이른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사나울 폭(暴)에 불꽃 염(炎), 말 그대로 매우 무덥다는 뜻이다. ‘물’과 ‘더위’의 합성어인 무더위는 습도가 많고 더운 것을 가리킨다. 무더위와 함께 따라다니는 불쾌지수는 온도와 습도의 조합으로 계산된다. 즉 무더위에는 불쾌지수가 높다는 말이다. 몸이 무기력해지면서 짜증나기 십상인 불쾌지수가 높은 날, 옆 사람의 작은 투정이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경치 좋은 풍경과 시원한 바람, 나무 그늘,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사람과 함께하는 휴식이다. 말해 무엇하랴. 폭염을 피해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두메마을길)을 향한다.

 

1구간 데크길

 

숲에서 만난 오아시스
여름의 문턱에서 다시 찾은 대청댐물문화관 앞 광장에선 늘 그렇듯 가슴이 탁 트이는 대청호를 만날 수 있다. 굽이굽이 이어진 산들과 드넓은 대청호가 조화를 이루며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내뱉게 만드는 그 모습은 언제 봐도 인상적이다. 더욱이 머리 위에는 해님이 여전히 제 위용을 뽐내고 있지만 대청호를 넘어오는 시원한 바람 때문인지, 눈앞에 펼쳐진 멋진 풍경 때문인지 도심에서 느꼈던 그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잠시간의 힐링으로 마음의 에너지를 채우고 본격적인 걷기에 돌입한다. 물문화관 뒤편으로 난 흙길을 걸으면서 또 한 번 자연에 놀라게 되는 경험을 한다. 두 달 전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연녹색의 새순으로 조금은 연약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나무들만 가득했던 이곳이 진녹색 잎으로 무장한, 생명 가득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해님조차 그 아래를 구경하지 못할 만큼, 걷는 이에겐 마치 나뭇잎으로 만든 터널 속을 걷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대청호를 넘어온 바람이 귓가를 살랑이며 잠시 흐르던 땀을 식혀주니 발걸음을 내딛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풍류를 즐기러 나온 한량처럼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느새 두메마을 길 초입의 2㎞ 구간을 훌쩍 지나왔다. 이정표처럼 그 자리에 서있는 나무와 벤치가 그 증거다. 겨울의 이곳에선 나뭇잎 하나 없이 오도카니 서있는 모습에 쓸쓸함을 느꼈지만 지금의 이곳은 생명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삶에 지쳐있는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대청댐물문화관 분수대에서 즐기는 아이들(왼쪽), 로하스가족공원 오토캠핑장. 
1구간 데크길에서 바라본 대청호.

 

 

또하나의 즐거움, 로하스가족공원 캠핑장
이어지는 길, 로하스가족공원 캠핑장을 만날 수 있다. 두메마을길의 본궤도는 아니지만 잠시 외도를 하기로 했다. 즐거움을 가득 담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 탓이다. 오토캠핑장에는 아이들의 쉴 곳을 마련해주고 먹을 것을 준비하는, 또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부모님들의 모습과 형, 누나, 동생 가리지 않고 아이들 특유의 유대감으로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하모니를 이룬다.

따뜻한 감상 하나를 마음에 추가하고 다시금 발걸음을 옮긴다. 보조여수로를 건너 이촌생태습지를 찾았다. 지난 봄 철쭉과 영산홍이 알록달록 색감을 뽐내던 건 온데간데없고 푸른 녹빛으로 가득하다. 시원한 음료 한 잔을 손에 들고 나머지 여정을 이어 가기로 한다. 이촌생태습지를 벗어나 숲길에 들어선다. 두메마을길 중 대청호를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이곳. 시원해 보이는 푸른 대청호의 모습에 잠시 발이라도 담가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상상만으로 짜릿하기에 만족하고 나머지 여정을 서두르기로 한다. 강촌지구생태습지를 지나 삼정동삼거리에 도달하면 이제는 보다 편하게 걷기를 시작한다. 오른쪽에 도로를 두고 만들어진 데크를 따라 왼쪽의 대청호를 바라보며 걷는다. 하나 신기한 점은 도로 위의 차들도, 데크 위를 걷는 이들도 그리 빠르지 않다는 것. 마치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마도 경치 감상에 본래 해야 할 일을 조금 느슨히 하는 까닭일 터이다. 느릿느릿 자연을 느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목적지는 다가온다. 뒷산의 땅모양이 마치 먹는 배와 같이 생겼다해 예전부터 ‘배산’이라 불리던 배고개마을에 들어서면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을 마무리할 때다.

글·사진=조길상 기자 pcop@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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