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길상 경제부 기자

 

2020년 최저임금이 시급 기준 올해보다 2.87% 오른 8590원으로 결정됐다. 1999년 2.69%, 2010년 2.75%에 이은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다.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을 주장하던 노동계도, ‘기업의 지불능력을 초과했다’며 삭감안을 내놨던 경영계도 이번 결정에 만족하지 못한다. 밤을 지새우며 서로의 머리를 맞대 결정한 사안일 텐데 왜 그럴까.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과 경영계를 대변하는 사용자위원, 정부에서 선임한 공익위원이 각 9명,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논리로 주장을 펴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합의점에 도달하는 게 ‘이상’적인 결과다.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건 1988년. 이후 노사가 표결 없이 합의로 의결한 것은 단 7번에 불과하다. 합의점을 찾지 못해 최저임금을 표결로 의결한 것은 26번에 달한다. 더욱이 표결에 노사 어느 한쪽이라도 빠진 채 진행된 게 17번이다. 2000년 이후엔 노·사·공익 합의로 최저임금액이 결정된 건 2007년, 2008년 단 2번에 불과하다.

최저임금 심의 법정기한을 지킨 것도 8번밖에 안 된다. 최저임금위에서 노사 양측이 팽팽한 대립을 계속 하다가 어느 한쪽이 심의 과정에 불만을 품고 집단 퇴장하거나 불참하는 게 일상이 됐다. 법정기한을 넘기더라도 법정고시일 20일 전까지만 결론을 내면 된다는 안일한 태도가 그 바탕에 깔려있다. 수백만에 달하는 근로자와 자영업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위의 현실이다.

올해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제5차 전원회의서 업종별 차등적용 안건 부결과 월 환산액 병기 안건 가결에 반발해 사용자위원 9명은 전원 퇴장했다. 이어 제6차 회의도 전원 불참했고 제7차 회의 때 7명만 복귀했다. 제10차 전원회의에선 사용자위원들이 최초요구안으로 삭감안을 제시하자 근로자위원이 전원 불참했다.
최저임금 심의·의결을 마치고 난 15일에는 최저임금위원회 내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의 사퇴를 밝히며 공익위원들의 사퇴도 촉구했다. 최저임금 논의를 부당하게 이끌었다는 게 그 이유다.

국어사전에 심의는 ‘어떤 안건이나 일을 자세히 조사하고 논의해 결정함’이라고 돼있다. 논의는 ‘어떤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말하며 토의함’으로, 토의는 ‘어떤 문제에 대해 함께 검토하고 협의함’이라고 나온다. 의결은 ‘어떤 의제나 안건을 의논하고 합의해 의사를 결정함’이라는 뜻을 지닌다. 그렇다면 내년 최저임금은 과연 심의나, 논의나, 토의를 거쳐 의결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뭐가 그렇게 불만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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