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못갖춘마디 사랑법

김미승

어느 시대 유물인지 못갖춘마디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사랑법이지요
누구에게 다가서는 일, 맘 보여주는 일
사삭스럽다고 아버지는
‘무뚝뚝’으로 명패를 삼으시고
막돌 대충 던져 만든 징검다리마냥
어머니께 들이대곤 했는데요
그러려니 하다가도 수틀리는 날이면
어머니 고구마 솥에 엎어진 대접처럼
궁시렁궁시렁 종일 끌텅을 앓곤 했지요
그럼 뭐하나, 다음 날이면
창호 문에 달빛 스미듯
헤프게 맘 열어 버리곤 했는데요
수백 수천 번을 낚이고도
또다시 그 미끼를 무는 운저리처럼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만만한 밥이었지요
만만한 건 보기만 해도 배부르고 등 따숩지요
만만한 밥인 어머니가 잠시만 보이지 않아도 아버지는
네 엄마 어디 갔냐, 언제 온다더냐
수시로 맘 들켜 주는 일, 평생
한 박자 늦거나 빨라서
못갖춘마디 사랑이지요

우리나라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이상한 주문을 받으며 자랍니다. 예컨대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느니,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알이 떨어진다느니 하는 것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가부장제 사회이기 때문에 그러한데, 그러다 보니 개인감정이나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일이 남세스러워, 남자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무뚝뚝’한 인격으로 굳어져 버립니다.

이 집 남자(아버지)도 그러합니다. 살가운 맛이라곤 조금치도 없는 남자에게 여자(어머니)는 한마디로 남자의 ‘만만한 밥’입니다. 수틀리는 일이 있으면 ‘어머니 고구마 솥에 엎어진 대접처럼 / 궁시렁궁시렁 종일 끌텅을 앓곤’ 합니다.

그러나 겉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 속까지 그런 건 아닙니다. 여자가 잠시만 보이지 않아도 남자는 네 살 먹은 어린애처럼 ‘네 엄마 어디 갔냐, 언제 온다더냐’ 하며 보채고 성화입니다. 잠시라도 엄마와 떨어져서는 못 살아, 엄마 치맛귀에 매달리는 어린애 같습니다.

실제로 이 집 남자의 인격은 미성숙합니다. 가부장제 사회가 요구하는 남자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온전한 어른으로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자연 부부간의 사랑도 늘 못갖춘마디입니다. 못갖춘마디 사랑에서는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불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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