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전 동부그룹(DB그룹) 회장 = 연합뉴스

  김준기(75) 전 동부그룹(현 DB그룹) 회장이 지난 2017년 자신의 여비서를 성추행 한 혐의로 피소되면서 해당 사건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피해자 A 씨는 2017년 2월부터 7월까지 김준기 전 회장이 자신의 신체에 손을 대는 등 성추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동부그룹 측에서는 “일부 신체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합의했던 것으로 강제성이 없었다.”, “A씨가 동영상을 내보이며 ‘돈을 주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했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수사가 시작되자 김준기 전 회장은 같은 해 7월 간과 심장, 신장 등 질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 이후 지금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다. 경찰 조사를 통해 당시 피해자 A씨가 저항하자 “너는 내 소유물이다”, “반항하지 말라”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며 사건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김 전 회장은 “개인적인 문제로 회사에 짐이 돼서는 안 된다”며 미국에서 사퇴를 발표했다.

추가로 김준기 전 회장은 여비서 성추행 사건 1년 이전인 지난 2016년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별장에서 가사 도우미 B씨를 1년 동안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지난 2018년 1월 제출한 고소장에서 김 전 회장이 주로 음란물을 본 뒤 자신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위 두 사건의 피해자 A씨와 B씨에 대한 조사는 끝마쳤지만, 미국으로 출국한 김준기 전 회장이 소환에 응하지 않아 피고소인 조사는 벌이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재 경찰은 외교부와 공조해 김준기 전 회장의 여권을 무효화 하고,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을 통해 적색 수배를 내린 상태다. 또한 경찰은 김준기 전 회장의 미국 거주지를 확인했으나, 그가 6개월마다 체류 연장신청서를 갱신하고 있어 체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의 체포가 난항을 겪고 있어 경찰은 두 고소 사건을 모두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뒤 김준기 전 회장의 신병이 확보되는 대로 수사를 재개할 방침이다.

 

  해외도피로 인해 수사가 난항을 겪고, 김준기 전 회장의 의도대로 잊혀져지는 듯 했으나, 지난 15일 가사도우미였던 피해자 B씨가 JTBC 방송 ‘뉴스룸’을 통해 당시 피해 상황을 녹음한 녹취록을 공개하며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녹음 기록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나 안 늙었지”, “나이 먹었으면 부드럽게 굴 줄 알아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 등의 말을 하며 B씨에게 접근했다. B씨는 당시 상황을 녹음하게 된 계기에 대해 ‘두 번 정도 당하고 나니까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누구한테 말도 못하니 그때부터 녹음기를 가지고 다녔다“고 말했다.

김준기 전 회장 측은 “성관계는 있었지만, 서로 합의된 관계였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씨에게 이미 합의금을 건넸으나 거액을 추가로 요구했다는 말도 더했다. B씨가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해 불순한 의도로 고소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B씨는 자신이 해고당할 시점에 생활비로 2200만 원을 받은 것이 전부라고 반박했다. 되려 김준기 전 회장이 이와 같은 사실들을 숨기기 위해 입막음을 여러 번에 걸쳐 시도했다며, 계좌내역을 경찰에 제출했다.

피해자 가족의 국민청원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16일에는 자신을 피해자 B씨의 자녀라고 밝힌 청원인의 국민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랐다. “김 전 회장을 법정에 세워달라”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청원은 “(성폭행) 고발 이후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인 가해자와 수사기관의 미적지근한 대응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이렇게 청원을 올리게 됐다”고 밝혔다. 사실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청원인은 김준기 전 회장이 피해자 B씨 곁에서 일본산 음란물을 거리낌없이 틀거나, “유부녀들이 제일 원하는게 뭔지 아나, 강간 당하는 걸 제일 원한다”라고 말하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여성관을 담은 말들을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글을 마치며 청원인은 “김준기가 본인 말대로 그렇게 떳떳하다면 합의하자는 말하지 말고, 핑계대지 말고, 즉시 귀국하여 수사 받고 법정에 서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의 수사기관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김준기를 체포해 주셨으면 한다”고 청원을 마쳤다.

이외에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진행된 인터뷰에서 피해자 B씨는 “고소를 해도 아무런 진전도 없는 것 같고, 부끄럽지만 또 이렇게 알려야만이 어떤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가지고 그래서 하게 됐죠”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고소 이후에도 김준기 전 회장측에서 합의를 요구하는 연락하며 압박해왔으나 모두 거부하고, 김준기 전 회장의 구속을 주장했다.

여론이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고 유유히 해외도피 생활을 즐기는 상황에 분노하자, 경찰은 청원과 같은 날 입장을 밝혔다. 경찰의 해명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고 있으며,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뒤 상대 국가에서 이를 받아들여야만 피의자를 본국으로 데려올 수 있다. 체포영장이 발부돼도 마찬가지인데, 김준기 전 회장은 여비서 사건과 관련해 체포영장이 발부도니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범죄인 인도 청구 권한이 검찰에 있으며, 아직 검찰의 범죄인 인도 청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 상황에 대해 김준기 전 회장이 추방되도록 미국에 요청이 됐으며, 합법적으로 미국에 체류 중인 사람이 아니나, 김준기 전 회장이 미국 현지에서 추방에 대해 재판을 걸어 귀국을 미루고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수사권은 주권의 일부이기 때문에 한국 경찰이 미국 영토 내에서 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수사가 난항을 겪으며 현재 기소중지 상태로 멈춰있으나, 김준기 전 회장의 수사가 멈추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법정 공방을 피해 해외로 도피한 여러 유명 정치인, 재벌들도 끝내 법정에 서게 된 사례들이 있다. 지난 2002년 대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장남의 병역비리 의혹인 ‘병풍(兵風)사건’ 당시 피의자 김대업을 필리핀 이민청과 협조해 체포한 경우가 있다.

회삿돈 322억여 원을 빼돌리고 21년간 도피생활을 했던 한보그룹 회장의 4남 정한근씨가 에콰도르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하기 위해 파나마를 경유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파나마 이민청에 의해 체포 및 구금됐다가 인천국제공하응로 송환되는 일이 있었다.

변종 마약 구매와 흡입 혐의를 받고 있는 현대 재벌 3세 정현선씨는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 영국으로 출국했지만 곧이어 귀국해 체포됐다.

사건이 기소중지 된다면 해당 기간 중 해외에 도피한 기간이 공소시효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이후 범죄인인도 절차가 진행되거나, 김준기 전 회장이 자진 입국했을 경우 곧바로 수사가 재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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