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리케이션으로 체험한 적나라한 ‘학교폭력’ 실태
교사들 “취지 공감하지만…” 교육자료 활용엔 주저


애플리케이션 ‘사이버폭력 백신’ 체험 중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카톡감옥’에 기자를 가둔 채 욕설을 내뱉고 있다. 애플리케이션 화면 캡처 사진.

학교폭력의 방식이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요즘 교실의 학교폭력은 일상화된 스마트폰 사용에서 비롯되는 이른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으로 변화했다. 가상공간에서의 괴롭힘은 청소년기 학생뿐만 아니라 성인의 감정까지 흔들리게 했다. 

31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사이버폭력 백신’을 내려 받아 사이버 불링을 기자가 직접 체험해봤다.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고 자신의 이름을 입력하자 휴대폰이 학교폭력 피해자의 것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민지’라는 이름을 쓰는 낯선 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벨은 받을 때까지 계속됐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다짜고짜 “전화 빨리 안 받냐”라며 잔뜩 성이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가 끊어진 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단체 대화방에 초대된 기자는 수 명의 학생들에게 둘러쌓여 한참 이어지는 욕설을 묵묵히 들어야 했다. “야 씨X”, “대답 바로 안 하냐 이준섭”, “요즘 안 괴롭혀줬더니 미친X이 X나 나대네”, “아 X나 짜증날라하네 씨X” 등 갖은 욕설에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치밀었지만 대답할 기회조차 없었다. 

‘카톡감옥’ 안에 갇혀 여러 차례 메시지가 계속되는 ‘떼카’를 간신히 벗어나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누군가 “야 이제 재미없다 페이스북 가서 놀자”는 한마디에 채팅방을 메웠던 이들은 곧 기자를 괴롭히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페북으로 공유하고 연신 댓글을 달기 시작한다. “우리 학교 왕따”, “겁나 웃기네 얘 누구냐”라는 조롱성 짙은 댓글 사이로 기자의 신상이 적나라하게 공개된다.

같은 시간, 문자메시지(SMS)도 불이 났다. 공개된 신상정보 탓인지 기자의 휴대폰에는 악의적인 문자들이 지속적으로 보여졌다. 하지만 오직 가족만큼은 달랐다. 페북을 보고 곧장 전화 받을 것을 재촉하는 동생, 일명 ‘Wifi 셔틀’의 피해를 본 건 아닌지 걱정하는 엄마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불현듯 ‘가족들 얼굴을 이제 어떻게 보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기자는 가족들 곁으로 유서를 남긴 채 세상과 이별했다. 

교육현장에서도 사이버 불링에 대한 근심이 크다. 사이버 불링이 오프라인 폭력으로 이어져 학교를 떠나도 때와 장소 구분없이 이뤄진다는 게 그렇다. 그런 점에서 사이버폭력 백신은 실제 피해자가 되봄으로써 학교폭력의 폐해와 심각성을 몸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 교사들은 애플리케이션의 취지엔 공감하지만 실제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것엔 주저한다. 악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대전 A 고교 교사 김 모 씨는 “나도 애플리케이션을 받아 체험을 해봤는데 너무 적나라해서 심각성은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다만 학교폭력 피해자의 상처를 끄집어내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 또 다른 누군가 이를 모방해 학교폭력 가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은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B 중학교 교사 이 모 씨는 “체험용으론 훌륭하지만 학생들에겐 이미 아는 내용일 수도 있어서 이와 관련된 예방교육을 선행하고 사용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다”라고 조언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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