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작은 빛

방진희

한 원로교사가 말했네
나, 위암 수술하고
요양차 홍삼과 현미를
죽 끓여 먹자 했더니
마누라가 처음 몇 달은
지성으로 해서 바치더라

그런데 그 몇 달 지나고
마누라가 힘들다고
입이 이만큼이나 나왔어
나 원 더러워서, 그래서
집에 있기 힘들어
나, 학교에서 죽을란다
하면서 복교했어

그런데 이웃집 명퇴한 김 선생
편안히 산책하는 걸 보면
명퇴하고 싶어, 외로워 보이지만

김 선생은 바보야
왜 혼자 사나?
아, 재혼할 것이지 말이야

우리 죽으면 배우자에게
3년 이상 같이 살았으면
명퇴금이 반 나오잖아
그거 준다고 하면
따라올 중년 여자들
꽤 있는데 말이야

어디 내 말이 안 믿겨?
진짜 그런 여자 있어
재혼이 간병인보다 더 좋고
싸다구! 계산을 해 봐!
그래도 김 선생은 내 말에
빙그레 웃기만 해

내가 또 답답해서 그랬지
김 선생, 늙어서
밥해 먹기 싫으면 어떻게 할겨?
혼자 병들어 귀찮으면 말이여

그랬더니 김 선생은
‘한 끼 사 먹죠.’
이러는 거야
나, 참
그 사람 그렇더라구

그러나 불평하듯 얘기하는
원로교사에게 스치는
작은 빛 있네

그 사람 그렇더라구
김 선생에 대해
중얼거릴 때마다
원로교사의 눈에
스치는 아름다운 빛
빛의 반짝임 있네

▣ 원로교사의 마음이 착잡합니다. 위암 수술 후 “요양차 홍삼과 현미를 죽 끓여 먹자 했더니” 처음엔 잘 해주던 마누라가 힘들다며 툴툴거립니다. 그 바람에 그만 화가 치밀어 집에 있느니 차라리 학교에서 죽는 게 낫겠다 싶어 출근했습니다.

원로교사가 사는 이웃에 김 선생이란 사람이 있는데 명퇴하고 혼자 삽니다. 원로교사가 보기에 김 선생은 아주 바보입니다. 나중에 죽으면 명퇴금을 주겠다 하고 재혼하면 여자들이 줄을 설 텐데 바보같이 혼자 사니까요.

원로교사는 모든 일을 ‘계산적’으로 봅니다. 아마 본인과 마누라의 관계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니 명퇴하고 혼자 사는 김 선생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아파서 간병인 두는 것보다는 지금 재혼해두는 게 훨씬 싸게 먹힐 것 같은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철저히 이해타산적인 그에게도 자기 생각과 다른 ‘차원’을 이해하려는 가능성이 조금 엿보입니다. “그 사람 그렇더라구”라는 말에는 자기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일 여지가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 틈으로 스며드는 ‘작은 빛’ 한 줄기가 그를 그나마 인간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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