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자 이순복 대하소설

진한 눈물을 흘리면서 애통해 하는 유연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애달픈 마음을 갖게 하는데 충분했다.

여기서 잠깐 ’이화초흥(二火初興)하면 유인월차(有人越此)하고 이사쟁충(二士爭衝)하면 불구자사(不久自死)란 말을 마천루 봉우리 밑 바위에 새겨놓아 후일 제갈무후를 회자하는 후학들이 있게 한 이야기를 해보자.
촉국이 등애에게 망할 때 등애는 길을 내고 산을 뚫어 마천령을 넘었다. 죽음을 결심하고 절벽을 내려간 장병들이 땀을 씻고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의갑과 무기를 정돈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앞을 바라보니 길섶에 비석 하나가 우뚝 서있었다.

등애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벌떡 일어나 비석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비석 전면에

'二火初興 有人越此. 二士爭衡 不久自死.'
등애가 한 동안 바라보며 비문을 재삼재사 읽어 보다가 비명을 지르기를
“아아!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등애는 온몸에 찬바람이 일며 진땀이 흐르고 소름이 쭉 끼쳤다.

왜냐하면 二火는 합쳐보면 炎 불꽃 염자다. 이때가 염흥 원년이니 곧 두 불꽃이 일어난다는 파자다.

또 二士爭衡(이사쟁형)은 등애의 자가 士載요 종회의 자는 士季다. 이는 곧 사재와 사계가 다툰다는 말이다.

다음의 有人越此(유인월차)란 뜻은 사람이 있어 이곳을 넘어왔다는 말이다. 곧 마천령을 등애가 넘을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글자는 두렵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즉 不久自死(불구자사)는 오래지 않아 스스로 죽는다는 뜻이다.

등애는 이 글자를 읽자마자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만 엎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한 동안 생사를 넘나들며 된 숨을 몰아쉬었다. 이러다가 등애가 불귀의 객이 될지도 모를 그런 급박한 형편이 되었다.

왜 그랬을까? 등애와 같은 영웅이 왜 갑자기 사색이 되어 이 모양이 되었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등애 자신의 군사행위를 비석에 써 두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의 전술전략을 간명하게 비석에 써 두었기 때문이다. 등애는 애써 숨 쉬기를 바르게 하고 호흡이 발라지자 조심조심 몸을 일으켜서 옷매무새를 바르게 하고 비석 앞에서 엎드려 절을 올리고 말하기를

“무후께서는 신인이십니다. 등애가 스승으로 섬기지 못한 것이 애석합니다.”

등애가 간절한 염원을 담아 말했다. 이일을 두고 훗날 시인이 시를 지으니

‘음평의 높은 고개 하늘과 가지런하다.
학도 겁을 내고 날지 못하고 돌기만 하는 곳.
등애는 담요로 몸을 싸 이곳을 내려갔다.
누가 알았으랴. 제갈무후 등애가 올 줄 알았으니...’

등애는 감상적인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정복자의 의연한 자세로 군사를 전진시켰다. 한동안 가다보니 거대한 빈 영채가 나타나자 등애가 좌우에 묻기를
“이것은 누가 싸움하던 빈 영채냐?”
“당시 1천 병마가 이 험준한 산골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명이 돌아가신 후로 촉주가 없앴답니다.”
“아아! 참으로 신인이시다. 제갈무후는 병가에게 귀감이 될 어른이시다.”
등애는 탄식을 금치 못하며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불구자사라는 4글자 때문에 번민하였다.
‘불구자사라...?’
‘내가 촉국을 얻고 성공한다 해도 결국 끝이 죽음이란 말인가?’
등애는 깊은 폐부에서 밀려나오는 신음성을 억지로 감추고는 뒤를 돌아보며 제장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은 앞으로 나아갈 길은 있으나 물러갈 곳은 없다. 앞에 있는 강유성에는 양식이 풍족하다. 너희들은 전진하면 살고 후퇴하면 죽는다.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승전고를 울려라!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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