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낀 하늘 숨어버린 대청호
때론 쓸쓸하게 때론 웅장함 선사
끝없는 길 가는듯 힘겨워도
끝이 있는 길, 정상 다다르면
행복 멀리있지 않구나 깨닫게돼

 

여름휴가 시즌이 끝나갈 무렵 다시 찾은 대청호오백리길 3구간(호반열녀길).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 방문인 탓에 익숙함이 묻어나지만 계절이 다른 이유에서일까 아니면 ‘함께 하는 이’가 다른 까닭일까 또 한 번 기대감이 들게 한다. 특히 날이 좋았던 호반열녀길의 모습과 달리 태풍의 영향으로 하늘엔 먹구름을 떠있는 이번 여정은 전과 다른 색다름을 느낄 수 있다. 형형색색의 수채화와 달리 묵직한 느낌이 드는 수묵화 속을 걷는 느낌이랄까. 가슴에 설렘을 안고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인생을 길에 비유하곤 한다. 그런 뜻에서 보자면 대청호오백리길 3구간은 참으로 굴곡 없는 인생에 가깝다. 높은 산을 올라야 하는 힘듦도, 반드시 넘어야 하는 장애물도 없는 평탄한 길이다. 누군가는 재미없는 인생이라 할 수 있지만 그곳의 의미는 오직 그 길 위에 있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다.
대청호오백리길 3구간의 시작점인 냉천버스 종점에선 사시사철 푸른 대청호를 감상할 수 있다. 항상 그 자리에서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대청호이나 보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때론 쓸쓸함으로, 다른 때는 웅장함으로 다가온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 대청호를 바라보며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고 다가올 가을을 기대해본다.

 

소나무 기개처럼 푸르른 대청호
관동묘려 가는길에서 바라본 대청호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걷는다. 동행하는 이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에선 작은 행복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 말했던 ‘무엇을 하느냐’ 보다 ‘누구와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대청호는 잠시 모습을 감췄지만 또 다시 만날 생각에 발걸음엔 힘이 가득하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인 근장골 전망대를 가는 표지를 만난다. 차 한 대 지나갈 0.8㎞의 외길을 따라 걷는다. 길이 제법 가파르던 탓에 온 몸이 살짝 물기를 머금었지만 남해 어딘가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전망대에 오른 순간 힘듦도, 삶의 스트레스도 날아갈 만큼 시원함을 선사한다.
과거 어디선가 읽었던 행복과 관련된 명언이 떠올랐다. ‘헌법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국민에게 부여한다. 그러나 행복을 낚아채는 건 당신 몫이다’라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중 한 명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나 ‘행복은 선택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그런 말들 말이다. 전망대에 놓인 돌의자에 함께 앉은 이 순간,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뜻하지 않은 사색의 시간으로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길을 나선다. 이후 냉천골 섬거리까지 걷는 코스에선 물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고 해 ‘양구례’라는 이름이 붙은 곳과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는 마산동산성을 지나게 된다.

 

근장골 가는길(왼쪽), 관동묘려 유허비 앞에서
관동묘려
마산동전망대 가는길에 바라본 대청호

 

냉천동삼거리에 다다르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으로는 대전 최초 사회복지시설인 미륵원과 3구간이 왜 호반열녀길인지를 설명하는 관동묘려를 향하는 길이 나오고 오른쪽으로는 3구간의 마지막 코스인 마산동전망대가 있다. 곧 비가 몰아칠 것처럼 먹구름이 가득해진 하늘을 탓하며 이번엔 오른쪽 길을 선택하기로 한다.
왼쪽으로 대청호를 바라보며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걷다보면 어느새 마산동전망대에 다다른다. 앞서 만났던 전망대와 다른 건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 위로, 위로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푹신푹신한 길을 따라 10분 남짓 걷다보면 작은 정자 하나와 탁 트인 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마치 바다에 온 느낌에 발을 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지만 눈으로만 보고 마음에 시원함을 담은 뒤 이번 여정을 마무리한다. 바쁜 일상을 살아오는 이들에게 느긋함과 한가로움으로 답하는,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게 해 준 대청호오백리길 3구간의 가을이 기다려진다.

글·사진=조길상 기자 pcop@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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