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준 사회부장

이른 아침, 동이 트고 날이 밝아오자 대전의 한 아파트 경비원 원 모(58) 씨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청소작업에 나선 거다. 늘 반복되는 일이지만 주민의 상쾌한 아침을 위한 임무이다 보니 소홀할 수 없는데 일단 한 숨부터 나온다. 놀이터 한켠에 마련된 벤치가 있는 쉼터를 볼 때면 그렇다. 이곳엔 늘 밤새 누군가 버리고 간 쓰레기가 한 무더기다. 국물이 남은 컵라면에, 음료수병에 담배꽁초까지, 매일 아침 버려진 양심을 목도하는 원 씨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바로 옆 편의점에서 사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거기서 먹고 버리지 왜 여기까지 와서 양심을 버리는지 원 씨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전시청 근처 빌딩숲 사이에 마련된 한 공원 쉼터. 저녁 무렵인데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ㅁ’자형으로 벤치들이 배치돼 있고 그 가운데 작은 쓰레기통(업소용 식용유통)이 놓여 있는데 쓰레기통은 거의 비어 있고 신기할 정도로 쓰레기통 옆에 담배꽁초들이 버려져 있다. 한참을 유심히 살펴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벤치에 앉아 담배를 다 피우고 농구하듯 슛을 날리는데 성공률이 낮다. 벤치와 쓰레기통 사이의 거리는 1m 남짓. 그런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재미삼아 ‘슛’놀이로 담배꽁초를 처리하려다 실패하면 일어나서 다가가 담배꽁초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일반적인 상식인데 거기서 끝이다. 엉덩이 한 번 툴툴 털고 그대로 자리를 떠난다. 이렇게 버려진 양심이 이곳에 고스란히 쌓여 대전의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는 거다.

쓰레기와 관련한 문제는 어느새 시민의식을 가늠하는 척도로 자리매김했다. 그만큼 사회문제로 부각됐다는 반증이다. 쓰레기 무단투기 문제는 버리는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간단치 않다.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무단투기가 많아지면 그만큼 처리인력과 비용이 늘어야 하는데 이는 온전히 시민 세금의 몫이다. 담배꽁초와 이물질 등 쓰레기들이 가로변 배수구를 막는 일도 허다하다. 배수구가 막히면 폭우 시 빗물이 역류해 주변 일대가 물바다로 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지자체는 장마에 앞서 배수구를 청소하는데도 세금을 쓴다.

쓰레기와 시민의식의 문제는 다시 공공 쓰레기통의 딜레마와 연결된다. 누군가는 공공 쓰레기통을 더 많이 만들어야 거리가 깨끗해진다고 항변한다. 쓰레기통이 있으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일부 몰상식이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거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미 쓰레기통 주변은 쓰레기장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앞서 언급한 공원 쉼터의 사례가 그렇다. 또 2002년 한일월드컵에 즈음해 깨끗한 도시이미지를 위해 가로변에 쓰레기통을 늘렸더니 되레 쓰레기가 더 쌓이는 현상도 목도했다. 가정에서 처리돼야 할 생활쓰레기까지 죄다 거리로 나온 거다.

넘쳐나는 쓰레기가 처리 한계치를 넘어서자 지자체는 부랴부랴 가로변 쓰레기통을 줄였다. 쓰레기통이 있으나 없으나 결과는 매한가지라는 판단에서다. 환경미화원과 단속 공무원들은 이래저래 거리에 나뒹구는 버려진 양심과 매일 마주하고 무단 투기된 쓰레기를 처리하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결국 쓰레기는 성숙된 ‘시민의식’의 문제로 남는다. 음식물과 1회용품 쓰레기 등 재활용 폐기물 발생 자체를 줄이는 일, 버려야 할 게 있다면 제대로 버려 양심을 지키는 일 모두 시민의 몫이다. 기초질서, 공공질서를 잘 지키는 이런 시민의식이 자리 잡지 못 한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강력한 처벌밖에 없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란 게 있다. 1969년 미국 스탠포드대학 심리학 교수였던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는 유리창이 깨지고 번호판도 없는 자동차를 브롱크스거리에 방치하고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사람들은 쓸모 있는 부품은 다 훔쳐가고 훔쳐갈 게 없어지자 자동차를 마구 부쉈다. 깨진 유리창 하나 방치했을 뿐인데 이곳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더라는 게 이 교수가 얻은 결론이었다. 1994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이 이론을 바탕으로 낙서를 지워 범죄를 줄이는 정책을 폈다. 시장이 낙서나 지우고 있다는 비아냥이 거셌지만 지워도 지워도 또 생겨나는 낙서와 몇 년간 씨름한 수고의 대가는 놀라웠다. 범죄율이 3년 만에 80%나 줄었다. 뉴욕시는 낙서를 지우는 일뿐만 아니라 신호위반, 쓰레기 투기와 같은 경범죄에도 적극 대응했는데 그 결과 강력범죄까지 줄이는 성과를 얻었다. 껌 한 번 잘 못 뱉었다간 어마어마한 벌금을 맞게되는 싱가포르의 사례는 너무나 유명하다.

강제 조치가 아니라 부끄러움을 아는 성숙된 시민의식이 도시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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