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미워하고 싫어하는 단계의 극점을 혐오(嫌惡)라고 부른다. 그냥 싫어하는 단계를 넘어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단계가 혐오이다. 혐오는 참으로 위험한 감정이다. 혐오만으로도 위험한 감정인데 요즘은 혐오를 넘어 극혐(極嫌)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된다. 누군가를 혐오한다는 것은 자신도 다른 이에게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최대한 자중해야 하고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다. 그러나 요즘 대한민국 사회는 갖가지 이유로 별의 별 혐오가 난무하고 있다. 이미 위험한 단계이다.

당연히 기피해야 할 감정인데도 불구하고 혐오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계속 확산되고 있다. 특히 개인미디어를 통한 무절제한 표현의 분출이 이루어지면서 혐오의 감정이 누군가에게 유용한 수단이 되고 있다. 혐오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는 이들이 사회적 주목을 받고 심지어는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혐오를 유튜브 등의 콘텐츠로 활용해 수익을 올리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니 무절제한 혐오의 감정이 날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온갖 자극적인 언어를 구사해 혐오를 부추기는 자들이 인기몰이를 하는 지금의 행태는 분명 잘못됐다.

그렇다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도 다양해서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지만 최근 난무하는 혐오의 대상을 살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자신과 다르면 혐오로 몰고 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성별에 따른 혐오는 나와 다른 성을 가진 이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남성이 여성을, 여성이 남성을 혐오하는 표현이 쏟아지고 있다. 한남(개념 없는 한국남자) 된장녀(과시형 소비를 일삼는 여성) 맘충(벌레 같은 엄마) 등은 젊은 층 사이에서 일상용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서로 사랑해야 할 남성과 여성이 혐오 경쟁을 벌이고 있으니 이걸 어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혐오의 표현은 대개 온라인에서 시작돼 급속히 확산되며 오프라인으로 나와 일상 용어화 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청소년이나 젊은 층에선 온라인에서 퍼지기 시작하는 혐오의 표현을 잘 모르거나 사용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 취급을 받는 풍토도 있다. 그래서 이들은 아무런 자책감 없이 혐오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저 단순한 유행어 정도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에게 비수를 날리며 쾌감을 얻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대한민국은 시나브로 혐오공화국이 돼가고 있다. 이미 위험단계에 이르렀다.

자신 스스로를 혐오하는 이는 없다. 또한 자신과 같은 집단을 혐오하는 경우도 없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싫어하고, 공격해서 상처를 안기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국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신과 다른 지역의 출신이라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많다. 장애의 유무가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성적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격하기도 한다. 마치 오락을 즐기듯 온갖 험악한 표현을 사용해가며 상대의 가슴에 상처를 안기는 일이 한국사회에서 만연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남에게 모욕감을 안기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이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늙어가게 되는 것을 알면서도 노인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성 정체성의 차이를 보이는 성소수자는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다. 그들이 무얼 잘못해서가 아니다. 그저 자신과 다른 성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공격받는다. 이주민들도 한국사회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공격받기 일쑤다. 외모에 대한 차별과 혐오 발언을 일삼는 것도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 사회에는 여전히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고 자신과 다르면 무차별적으로 혐오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그냥 두고 보기만 할 단계를 넘어섰다.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우선은 교육을 통해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할 줄 알게 해야 한다. 자신과 다르면 공격부터 하고 보는 문화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급 확산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는 순간 자신도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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